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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로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맹세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다.
생각해 봤는데, 지금은 이렇게 누워 있는게 하고 싶은 일같다. 얼마나 무엇도 하지 않는 날들을 지켜나갈지 잠자코 보는 중이다. 깔아져 누워만 있는 주말이 벌써 11월 부터였으니까, 이직하고나서부터 생긴 습관처럼 보이기도 한다. 변명처럼 그때부터 겨울이 시작됐다. 보물같은 토요일 밤을 보내고 나면 그래도 정신이 든다. 하루 밖에 남지 않았어. 미세먼지는 작고도 큰 핑계다. 도저히 나갈 수 없는 날씨를 온 하늘이 만들어 준다. 나가지 않는다고 그 공기를 마시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신나게 걸어다니고 싶은 기분을 주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주는 토요일까지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주말에도 루틴은 있다. 방청소와 빨래, 한 끼 정도는 먹기, 그리고 책 두어 권 읽기. 사실 이렇게 적어놓은 것은 숨쉬는 일과 마찬가지기 때문에, 특별히 루틴이라고 할 것도 없다. 숨쉬는 일과 다름없는 일의 가짓수를 늘려야 하는데. 하는데 말이다.
오래만에 맡는 공기가 좋았다. 미세먼지 수치가 놀랍게 떨어져 황급히 문을 열었다. (미세먼지라는 단어가 몹시 미운데, 첫째로는 문장을 망치치기 때문이다) 냄새라는 말은 유독 좋지 않은 것을 가리키는 것 같을까. 공기에 대해서 좀 더 자세하게 말하고 싶은데 잘 되지 않는다. '향기'는 공기를 표현하기에 작은 범주에 있다. 눈 말고, 다른 기관이 느끼는 감각에 대한 말을 알고 싶다. 예를 들면 손바닥 뼈라든지, 어깨죽지라든지. 내장의 어떤 기관. 좀 다른 신체가 계절과 시간에 따라 느끼는 결과에 대해서. 눈은 정말 지친다. 눈을 중심으로 돌아가지 않는 게 없다. (눈에 대한 이야기는 좀 더 이어서 해야겠다)
토요일에 <도련님>과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를 읽었다. 그간 나쓰메 소세키의 책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만 읽었고 어쩐지 찰스 부코스키 책은 접한 적이 없었다. 몇 권의 중요한 책이 방치턱이나 부표가 된다는 점은 흥미롭다. 언니는 이 두 권을 극찬했고, 나는 안타깝게도 한 권도 알지 못해 맞장구를 치지 못했다. 그 길로 주문해 읽은 결과는 언니의 말과 행동이, 이 책과 하나로 일치한다는 점을 알았다. 그러기는 쉽지 않다. 이 책 두 권을 베이스로 오차 없이 쌓이는 아름다움. 책을 많이 읽었지만, 방향타가 될만한 책을 뚜렷이 생각해 본 적은 없다. 책을 읽어서 무엇하나.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날 나는 안톤 체호프를 추천했고, 이유로는 재미있다는 점 하나였다. 이 유머를 제대로 표현해 낼 말이 내겐 없다. 그리고 체호프의 책을 다 읽은 것도 아니다. 이 참에 다 읽어봐야겠다. 체호프는 천재야. 세 줄만 읽어도 웃긴 글을 쓴다.
다시 <도련님>과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한 작가가 각각 20대와 말년에 쓴 것처처럼 닮았다. <도련님>은 우화처럼 보인다. 웃다가 책이 끝나는 데, 그래서 뭐지. 라고 물을 수도 있다. 가볍군.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책이란 그 내용의 무게와 상관없이 읽은 이가 얼마나 더 많이 가져갈 수 있느냐에 달린 것 아닌가. 나도 많이 가져가고 싶다. 말하자면 도련님의 인생 자체를. 그렇게 대답할 수 있는 용기를. 다 내던지고 다시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배짱을. 100여년 전에 쓰인 책이라고 생각하기에 <도련님>은 아직도 지금을 앞서있다. 이런 개인이 살만한 장소는 아직도 마련되지 않은 듯 하다. 만나보고 싶을 정도라니까. 그가 나에게 무슨 기분 나쁜 별명을 붙여줄지 모르겠지만, 나도 지지 않고 별명을 지어줄 용의가 있다(몇 개 생각해 뒀다)
<죽음을 주머니에 넣고>는 특히 쓰는 이들에게 귀감이 될 것 같다. 시시한 생활을 하고 있는 이들에게도. 말년의 일기를 모은 책이다. 찰스 부코스키는 밤에 글을 썼다. 낮을 처치하기 위해서 매일같이 경마장에 나갔다. 실제로 돈을 걸기도 했지만, 돈을 따는 데는 별 관심이 없었다. 경마장에 나갔던 이유는 제대로 된 지옥을 눈앞에서 보기 위해서였다. 게다가 경마장에서는 시간이 무척 빨리 간다. 매일 있어도 빨리 흐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설픈 무기를 가져와서는, 그러니까 칼이나 총을 잘 못쓰는 사람들이 모여서 제대로 죽이지도 못하는 곳이 경마장일 것이다. 덜 떨어지는 모가지들, 핏자국들, 그런게 보이지 않는 마권과 운동장, 시간에 맞추어 그 위를 밟고 달려나가는 말과 기수들. 부코스키는 황폐했지만 건강한 사람이었다. 많은 글을 썼다. 모두 자신을 위한 글이었다. 이렇게까지 드러내도 될까. 싶은 일기를 볼 수 있어서 미안하고 고맙다.
그는 말년에 매킨토시 컴퓨터로 이용해 글을 썼는데, 좀더 빠르고, 많이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좋아했다. 그의 나이 대략 70 무렵에 말이다. 그는 그때도 컴퓨터를 배웠는데, 이를 잘 배워야 자신을 글을 날리지 않고 쓸 수 있다는 점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부분을 읽으며 신났다. 왠지 말이 잘 통할 것 같았다.
오늘 꼭 해야할 일을 적으며 마무리하겠다. 55인치 티비를 사야한다. 구매에 성공해서 왜 그 티비로 사게 되었는지 한 바닥 써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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