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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콜


"나의 악몽이 저기서 잠들어 있다" 


너는 저기서 너의 잠을 잔다. 나는 너를 꿈꾸지만 그건 나의 악몽이 된다. 고통스러운 잠과 고통스러운 생각에 입을 다물고 턱을 괴었다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살에서 살의 온기가 둥글게 떨어져 나간다. 나의 것이 아니었고, 나의 것이 될 수 없었던 날들. 나는 아직 내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다 세지 못했다. 하지만 나 하나를 잃지 않았다는 것만은 알고 있다. 나는 여전히 너와 매일 이야기를 나눈다. 대화의 끝은 늘 고통스럽고, 고통이 잦아질 즘 은연중에 대화는 시작된다. 나는 늘 방을 치운다. 두 번을 쓸고 닦아도 내가 남아 있어 언제와서 다시 이어지는 대화. 





코너는 이름 그대로 궁지에 몰려 있다. 


모든 걸 망쳐버리고 소리지르고 싶지만, 일상을 조금만 잃어도 어긋날 모든것이 어떻게 엉켜버릴지 가늠도 되지 않는다. 때문에 묵묵히 작은 빛이 금방 꺼져버리는 단추구멍 같은 일상을 꿰멘다. 토스트를 하고 쨈을 발라 먹고, 세탁기를 돌리고 학교가는 턱 끝에서 배꼽아래까지. 코너가 삐끗할 수 있는 것은 늘 꿈 속이다. 집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지고, 엄마가 그 안에서 바닥을 잃지만 코너는 엄마의 팔을 잡아 당겨 올리지 못한다. 엄마가 암흑 속에 빠지며 꿈이 깬다. 엄마는 투병중이고, 아빠는 이혼했고, 학교에서는 왕따다. 코너에게는 주목나무를 바라보고 상상하는 일과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그려내는 일만이 위로다. 


코너는 믿을 수 없는 일을 진실로 믿는 것이 잘 되지 않는다. 엄마가 다시 건강해질 거라는 기대가 헛되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걸 발설하거나, 그렇다고 생각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다. 왜냐면 나는 아직 12살이고, 그러니까 아직 어리고, 그러니까 순진무구하게 믿어준다면 엄마가 다시 건강해질지도 모르니까. 이렇게 착하게 빌고 또 빌게 되면, 엄마의 병이 낫게 되는 게 지금껏 읽어왔던 동화의 이야기니까. 그렇게 나아지지 않는 희망을 애써 삼키고 있을 때, 저 언덕 위의 주목나무가 일어나 저벅버적 걸어서는 코너가 있는 2층집 창문으로 고개를 드민다. 다짜고짜 이야기를 시작한다. '세 가지 이야기가 끝나면, 네 번째 이야기는 네가 해야 한다'고 겁을 주면서. 주목나무는 착한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가릴 수도 없고, ~행복하게 살았다는 마무리도 없고, 그래서 무엇을 배우면 좋을지도 알 수 없는 세 가지 이야기를 들려준다.  


착해지지 않아도 돼.

무릎으로 기어 다니지 않아도 돼.*


주목나무는 무너져가는 세계에 머물며 착한 아이로 남고자 하는 코너를 울린다. 기어코 울려 버리고, 스스로 모퉁이가 되어 코너가 잡고 돌아야 할 무거운 순간이 되어준다. 나를 잡고 있지만, 이제 곧 손을 놓게 되겠지만, 여기를 가볍게 돌고나면 다른 세계가 있다고 말해준다. 그 모퉁이는 누구나 돌아야 하는 인생의 어떤 점이다. 언젠가 너에게 전해준 종이가 반으로 접힐 때가 온다. 


나의 마음이었던, 나의 살이었던, 나의 미소였던 그곳은 더 이상 드넓지 않아서 너는 다른 면으로 굴러떨어질지도 모른다. 누구나의 이야기는 반에서 반으로, 다시 반으로 접혀 들어간다. 더이상 접어올릴 수 없을 때 하늘의 별이 된다. 그 때가 누군에게나 온다. 우리가 살아 있다는 이유로 맞아야 하는 죽음의 순간이다. 아직 나의 이야기가 남아 있기에 그 손을 놓을 때가 온다. '보내지 않는 것'이 '사랑하는 것'은 아니야. '떠날 수 없음'이 '착한 것'은 아니야. 너는 용기 있게 너에게 주어진 삶을 맞아야 해. 주목나무가 들썽인다. 코너는 엄마와 깊게 헤어진다. 어쩔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고, 헤어짐을 헤어짐으로 맞아준다. 


한 개의 이야기가 끝나가고 있다. 너는 착하지도, 나쁘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네가 행복해질 거라는 약속은 없다. 교훈도 물론 없을 것. 너는 이 헤어짐을 만나서 무엇이 되었니? 더욱 네가 되었니? 진실로, 너만이 부딪혀 느낄 수 있었던 너의 심연을 들여다 보았니. 코너가 할머니와 엄마가 꾸려준 방에 남아 엄마가 남겨준 그림을 한 장 한 장 들출 때, 네가 꾸었던 꿈이 실은 나의 것이기도 했다는 고백을 듣는다. 코너가 꿈에서 보났던, 주목나무가 들려주었던 이야기가 엄마의 그림으로 남겨있다. 네가 울면서 준비했을 헤어짐의 마음을 나 역시 잡는 것이 쉽지 않았어라는 엄마의 목소리가 그림으로 살아나 한 장 한 장 넘겨지고 있다. 성장이라는 '코너'를 준비하기 위해서, 인생의 한 켠을 마련해두기 위해서. 이 모든 것을 어리다거나, 슬픈 이야기만으로 소비하지 않기 위해서 이렇게 크고 오래된 나무가 내 안락한 집 창문을 부수고 들어와야 했다. 



*메리 올리버, 「기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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