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이후의 글

사라지는 일

_봄밤 2017. 11. 27. 22:50



버스는 3D의 영화처럼 밤의 곡률을 접어들었다. 현실을 따라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남은 3D처럼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부드럽게 꺾인 코너에는 가로등이 불빛만 보였다. 점점이 앞으로도 많이 남아있었고, 지나온 뒤로도 많았다. 보던 영화를 끄고 잠시 밤을 바라보았다. 버스는 천천히 달리고 있다. 나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해 버스를 다시 타고 집으로 돌아간다. 아주 오랜만이다. 


십일월이 지나고 있다. 퇴근하고 이주는 바닥에 누워 있느라 시간을 다 썼다. 요 밑에 들어가서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동생의 퇴근을 기다린다. 저녁을 허겁지겁 먹거나, 일절 대지 않거나 하는 연속이었다. 그 사이 감나무 집은 감나무의 가지를 다 쳤다. 감나무는 덩그러니 기둥만 남았다. 욕실의 타일이 떨어져 공사를 했다. 인내와 포기 사이에 있다. 직수로 거르는 정수기의 물은 계절을 따라 온도를 좇는다. 물이 차가워졌다. 


노트북을 킨 건 별일 아니었다. 나는 이곳에 존재하다가 아무도 모르게 사그라들 수도 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의 세계에는 발도 들여놓지 못했다. 그곳에서 어떻게 있어야 할지 모르겠다. 나는 거의 엄마와 같은 심정으로 인터넷을 본다. 변두리에 있다. 나를 얼마나 드러내야 하는지, 그게 무엇 때문인지. 왜인지. 좀처럼 알지 못하겠다. 


몸이 움직이는 이곳에서의 생활은 단조롭다. 먼저 말을 걸거나 다정을 취하는 일이 점점 어려워진다. 몸을 왼쪽으로 뉘었다가 오른쪽으로 돌아선다. 나는 그러는게 좋다. 다섯 권의 책을 깔아 놓고 한 권도 읽지 않는다. 제목을 두 번씩 읽고 잔다.  


팔월부터 시작한 이직은 시월로 마무리되었다. 옮긴지 한 달이 다 되어가고 있다. 직장을 옮기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삼일 쉬었던 일이었다. 정말 기쁜날이었다. 오전 10시를 엄지발가락을 구부리고 손가락을 구부리는 일로 보내는 일은 즐거웠다. 


작은 일기를 쓰고 기쁘다. 요새 포우라는 게임을 하는데 포우는 자고 나면 더러워져있고 배고파 한다. 방을 치우고 씻기고 밥을 먹고나면 재미 있어야 한다. 공놀이로 놀아주면 조금 지친다. 그러면 재운다. 재우는 일이 가장 좋다. 포우가 자는 걸 보다가 나도 따라서 잔다. 아까 당근을 줬는데 살이 엄청 쪘다. 이유를 잘 모르겠다. 포우를 키우는 일이 내가 사는 일과 비슷한 것 같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