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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스포트-김경주 산문집
당신과 나는 무릎이 닮아 있었습니다. 당신과 나는 새끼손가락이 둘 다 아주 길었습니다. 당신은 내 방에서 책을 보다가 고양이처럼 잠들었고 나는 당신의 방 안에서 창문을 열고 몰래 담배를 피운 적이 있습니다. 당신과 나는 함께 엘리베이터를 타던 날 동시에 서로 좋아하는 숫자를 물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발에 꼭 맞는 분홍색 구두를 샀고 점원이 무릎을 꿇고 구두를 신겨주면 금세 얼굴이 빨개지곤 했습니다. 당신은 일요일 아침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운동복 차림으로 슈퍼에 들어가 우유를 사들고 오는 모습을 내게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당신은 언제나 내게 '이 세상에 없는 영화관의 주소'같은 시를 써달라고 했고 당신은 시골 버스를 타고 가면서 창문으로 내 옆모습을 훔쳐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당신과 나는 자주 이번 생에 목격되었고 이번 생을 실컷 훔쳐보고 가자고 해변에 누워 KGB 맥주를 부딪쳤습니다. 당신은 귀고리 한 알을 자주 잃어버리는 습관이 있었고 나는 당신에게 물빛에 가까운 귀고리 한 알을 자주 사주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당신과 나의 '사이'에 해가 지고 바람이 불고 하늘에서 저녁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사이'에서 나는 숨어 있습니다. 당신과 나의 '사이'에서 누런 눈물이 잠들지 못하는 가축의 눈을 적시고 있습니다. 154
맞습니다. 사랑은 일생을 다해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사이에 놓여 있는 여백입니다. 155
그의 입이 진실로 하나 뿐인지 의심스럽다.
허니와 클로버를 보면, 그 아가씨, 하구미는
자신 앞에 열어보지 못한 상자가 셀 수 없이 많이 있는데
평생을 다해도 다 열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한다.
하구미는 만화에서만 나오는 사람이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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