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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테로포니
임유영
방과후 문예반에서 소녀들은 정확한 문장을 쓴다.
소녀들은 또래보다 빨리 읽는다. 소녀들은 하나의 문장을
시작하고 끝낼 줄 안다. 여러 개의 문장을 잇고 쓸데 없는 문
장을 뺄 줄 안다.
소녀들은 이야기를 빈틈없이 전개한다.
곁으로 새는 법 없이 기승전결의 구성을 만든다.
소녀들은 쓴다. 과학기술의 발전을 맞이하는 청소년의 올
바른 자세에 대해. 개인적 차원과 사회적 차원에서의 성폭
력 방지 대책을 제시하고 광복을 기념한다. 조국의 통일을
염원하거나 반대한다. 선조들의 기상을 찬미하고 독립 열
사를 추모한다.
소녀들은 어제 옆집 아저씨가 엄마한테 시비 거는 광경
을 보았고
소녀들은 요새 친구들과 은근히 멀어진 것 같다고 느낀다.
소녀들은 교실에서 쓰고, 때가 되면 야외에 나가서 쓴다.
그중에서도 잘하는 소녀들은 시외버스를 타고 다른 지역
에 가서 쓴다.
소녀들이 쓴 글중에서 잘된 글은
문예반 선생님이 본보기로 뽑아 낭독해주신다.
선생님은 시인이다. 봄에 피는 꽃, 여름에 우는 새에 관
해서 쓰시고
자신이 발표한 시를 소녀들에게 낭송해주시기도 한다.
소녀들은 그것이 턱없이 단순하고 유치하다고 느끼지만
동시라서 그렇겠거니 싶다.
선생님은 여러 권의 시집을 내셨고
선생님의 시 중에 죽거나 죽이는 글은 없다.
소녀들도 죽거나 죽이거나 죽고 싶다고 쓰는 대신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립고 동생에게 미안하다고 쓴다.
소녀들은 선생님이 친구의 글을 읽어주는 걸 듣다가
가끔 눈물이 날 때가 있다.
죽음과 눈물과 폭력과 섹스와 오물과 고통이라면, 소녀
들은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쓰고 치워버리지만
어느 여름 오후
선생님이 사과 한 알을 교탁에 올려놓고
그것에 대해 쓰라고 하셨을 때
소녀들은 죽음과 눈물과 폭력과 섹스와 오물과 고통을 생
각하는
완벽한 방법을 알아낸다.
음악이 시작된다.
<오믈렛>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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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게 쓰인 모든 온점의 자리. 소녀의 여러가지 역사를 옮겨 놓았다.
각 소녀가 각기 다른 연에 반응하고 감명하고 고개를 숙였다가 든다.
헤테로포니(heterophony)는 음악에서 단일 멜로디 라인의 동시 변주를 특징으로 하는 텍스처 유형을 말한다고(위키백과)
오랜만에 만나는 좋은 시집.
<헤테로포니>는 시작하는 시이다. 심혈을 기울였겠으나 애쓴 티를 내지 않으면서 좋은 시를 꺼내 놓아야 하는데, 그걸 잘 해냈다. 평점 4점을 무난히 거뜬히 넘기고 낮게 뜬 공, 외약수가 잡지 못하는 의외의 곳으로 빠르게 흘러간다. 전력없이 여유있게 출루하는 타자. 모자 아래로 미소가 보인다. 아, 그 미소는 펜스 뒤 독자의 것이다. 제목은 <오믈렛>이지만 버섯에 대한 시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두 개는 일단 모습이 닮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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