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의 기쁨

 거의 2주 만에 수영장에 나갔다. 가보니 그날은 접영을 연습하는 날이었다. 접영이라도 25m씩 끊어 하는 것은 사실 크게 부담스럽지 않다. 그런데 접영+자유형 50m를 한 세트로 10바퀴를 돌라면 좀 달라진다. 물론 할 수는 있다. 팔이 안 펴지는 순간이 와서 그렇지. 물을 도저히 잡아내지도 못하겠고 팔을 물 위로 꺼내지도 못하겠는 순간이 온다. 아 이제 안되겠구나. 그때 포기하는 일은 분하거나 안타깝지 않고 '살았다'거나 '살겠다'라는 느낌을 준다. 그리고 정말 만족스러워서 방금전까지 죽을 것 같았는데 행복이 몸에 퍼진다. 포기하고 행복하다니 제정신인가. 그러나 몸의 한계는 생각보다 빨리오고, 무리하지 않는 선을 직감적으로 안다는게 행복과 관련하다니 신기한 일이다.

 

그 한계가 예전에는 자유형 5바퀴였다. 4바퀴째면 힘들어서 쉬어야 했다. 이제는 16바퀴도 할 수있게 되었다. 시간이 좀 걸리고 바퀴 수를 세는 게 헷갈려서 그렇지. 

 

강습을 받는 이들 모두 10바퀴를 돌지만, 첫 번째 순서로 레인을 도는 사람의 10바퀴는 좀 더 힘이 든다. 한 12바퀴 쯤 돈다고 생각해도 될 것이다. 앞에 아무도 없고 물은 고요하고, 모든 사람이 뒤에서 나를 본다는 건 정말 피로한 일이다. 그런데 이건 2번째 순서로만 돌아도 금방 낫는다. 힘듦이 절반으로 줄어든다. 앞에 한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 위로가 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잘하거나 힘들어하거나 어떤 모습을 보여도 말이다. 잘하면 잘해서, 못하면 못해서 힘이 난다. 물을 가장 먼저 열어주는 사람들이 가장 힘든 수영을 하는 것 같다. 

 

가장 힘들 때는 8바퀴쯤 돈 순간이다. 이제 2바퀴만 하면 되는데 아직도 2바퀴나 남았다. 선생님은 갑자기 주먹을 쥐고 수영을 하라고 한다. 주먹을 쥐고... 그러면 앞에서 했던 것보다 훨씬 힘들고 잘 나가지도 않는다. 물에 빠지고 있는 건지 앞으로 나가는건지 허우적 대다가 겨우 한 바퀴를 돈다. 이걸 반복하다보면, 나는 운동 절대 못했겠네, 하는 순간도 온다(사실 강습 때마다 온다). 나야 안되면 한 번쯤 쉬어도 되지만 선수들은 그 안되는 순간을 자꾸 지연하기 위해 노력할 것 아닌가. 한 시간 강습중에서도 20분의 연습에도 지쳐버리는 것을 그들은 인내할 것이다.

 

이건 체력전이기도 하지만 정신전이기도 한데. 도대체 그만 두고 싶은 순간을 선수들은 어떻게 참아내는 걸까? 어떻게 힘든 몸을 속여서 아직 할 수있다고, 속이고 응원해가며 끌고 가는 것일까. 포기의 기쁨도 모른 채. 하기사, 세간에 전혀 장려되지 않는 포기의 기쁨을 아는 사람이 알리 만무한 일인 것 같다. 그저 내가 할수 있는 일은 포기의 기쁨을 좀 나중에 알기로 하는 것. 기쁨은 마지막에 올수록 커지니까(?) 오늘 했던 포기를 내일은 좀 더 뒤에 하기로 한다. 안한다는 건 아니고. 하기는 할거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