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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로 접어든 배구. 일요일이 현충일이어서 1주를 쉬었다. 오랜만의 체육관은 에어컨이 나오기 시작했다.
연습하기 전 감독님과 잠깐 얘기할 시간이 있었다. 여느 운동 청춘물의 클리셰처럼 읽어주길. 감독님은 나무로 된 마루 단상에 어깨를 기대고 있었다. 단상의 좌우에 있는 출입문은 열려서 해가 눈부시다. 일렁이는 빛과 함께 언뜻 보이는 초록의 나무들. 배구화를 갈아신는 내게 대뜸 물었다.
'밤아, 니 배구 재밌니?'
서른살 중반의 나이에도 이런 말을 들으면 어떻게 대답할 지 모른다. 멋지게 대답하고 싶은데. 보통 주인공들은 이런 질문을 들으면 뭐라고 하나? '재미있다'고 하면 너무 빤하고. 두 달밖에 하지 않았으니까 섣불리 말하는 것 같고, 앞으로 있을 험난함을 모르고 하는 말 같아 뜸을 들였다. 벌써 땀이 난 얼굴을 들어 감독님을 보니,
'난 니가 한 2주 나오고 안나올 줄 알았다'
뭐라고? 나는 이미 배구동호회(라고 간편하게 부른다)에 나오기 전부터 등번호를 뭘로하면 좋을까 고민했던 사람이다. 나의 오기를 이제서 알아챘다는 말일까? 두 달은 되어야 저 놈 배구가 재미있나보다 짐작하게 되는 건가? 한 평생 배구감독을 했어도 2주 만에 알아채기는 어려운걸까? 이 말에 발끈해 '40살이 되어도 할건데요' 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막상 40살이 얼마 안 남은 거다. '평생할 건데요.' 라고 바로 고쳐 대답했다. 배구가 뭔지 아직 모르는 사람의 대답이라 할 수 있다. 네트 앞으로는 가본 적도 없고 뛰어오른 적도 없는 사람의 말. 세터와 함께하는 스파이크 연습에 아직 끼지 못해 볼보이를 하지만 분개하지 않고 그것도 다 공부의 시간이라고 생각할 줄 아는 청춘물 뉴비의 말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네트 앞에서 있게 되지 않을까? 배구를 하겠다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코트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할만한 사람은 이미 다 제쳤다고 볼 수 있으니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십 수년 만에 갑자기 배구가 하고 싶다는 사람들이 얼마 되지 않으니까.
평생 배구 할건데요! 라고 철없이 말하는 삼십대 중반의 뉴비와 감독님의 실랑이 주변에는
배구화를 갈아신는 다른 운동물들의 주인공이 있고, 곧 서른 몇 개의 제 각기 다른 서사의 주인공들이 코트로 모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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