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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처음으로 <해적>이라는 발레를 보았다. 그리고 알게된 사실. 내가 본 건 21년 첫 번째 프로그램이고, 그 프로그램은 6일만 진행되며, 국립발레단의 1년 라인업이 5개라는 것이다. 길면 2개월도 열리는 뮤지컬이나 콘서트를 봤던 나에게 이 짧은 일정은 충격이었다. 일주일도 안되는 일정을 놓치면 이번 프로그램은 끝이 난다. 그래서 그 다음에도 발레를 예약했다. <라 바야데르>였다. 발레를 배우고 리뷰를 쓸 수 있으면 좋겠다.
https://www.korean-national-ballet.kr/ko
몸으로 표현하는 시간
두 번 밖에 보지 않았지만 발레는 아주 천천히 진행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한 발을 들고 같은 자리에서 도는 동작을 한다고 했을 때, 발레를 처음 접하는 사람은 애써보지 않아도, 동작 하나하나를 찬찬히 다 살필 수 있다. 얼레가 자연스럽게 풀리고 하늘에 연이 머무는 걸 보는 것 같았다. 실을 천천히 잡아 당기고 스르르 풀면 멀리 달아나는 연처럼 무용수분들이 움직였다. 시간이라는 실이 그들의 몸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평생에 체화된 힘 때문이겠지.
공중을 건네는 사람, 공중에 안기는 사람
발레리노는 발레리나를 서포트하며 이 시간을 극적으로 더 늘려트린다. 발레리나를 날게 하는 것처럼 그녀를 들어서 움직이고, 발레리나는 리노가 잡아서 옮겨준 거리까지 연기한다. 들어서 움직이는 사람은 그 무게를 전혀 힘들지 않은 것처럼 해야하고, 들린 사람도 들렸다는 자각을 보여주지 않고 편안하게 연기를 해야하는 것 같다. 어떤 연기에서는, 발레리나가 발레리노에게서부터 흘러내리는 것 같은 장면이 있었는데 우리집 고양이를 안을 때가 생각났다. 고양이를 안는 것은 아주 쉽다. 고양이는 스르르 나를 벗어나 무릎 아래로 내려간다. 고양이가 5kg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 두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었다.
얼굴과 등을 함께 보여준다는 것
타인을 마주한 이가 볼 수 있는 아름다움은 얼굴 아니면 등 둘 중에 하나이다. 그러나 발레에서는 한번에 볼 수 없는 두 가지가 한꺼번에 보이는 순간을 만난다. 오르골의 인형처럼 도는 장면이 많기 때문이다. 천천한 시간에 등을 보이는 동시에 또한 얼굴을 보여준다. 한정된 시간에 살아 움직이는 몸의 모든 장면을 넣기 위한 것 같고, 오직 한 방향에서만 광객을 마주하는 아주 오래전부터의 공연이 고심했던 결과같다.
이것은 한 눈으로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그린 회화를 보는 것 같았고, 벌써 잊혀졌거나 아직 겪어보지 못한 세월 만나는 것도 같았다. 어떤 이를 만나고 헤어지는 순간이 지나가는 것 같기도 했고, 지나갔거나 아직 오지 않은 사람을 기다리는 일 같기도 했다. 발레를 본다는 것은 내가 아직 알지 못하는 감정을 보고 표정을 짓는 일은 아니었을까.
<라 바야데르>에서 보았던 어떤 이름 모르는 동작이 가끔 머릿 속에서 반복된다.
아래는 김리회 발레리나 & 김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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