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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을 생각함

_봄밤 2018. 5. 7. 15:27


물을 잡아내며 그 위에서 이동하는 '수영'은 몸의 한계를 분명하게 알기 때문에 나온 움직임이다. 걷는 방법의 가짓 수가 없는 것은 필요 없기 때문이다. 물에서는 많은 능력이 무력해진다. 숨 쉴 수 없음, 언제나 떠 있을 수 없음, 말할 수 없음, 들을 수 없음, 냄새 맡을 수 없음. 물은 끝없이 깊어져 발은 한참 전부터 닿지 않는다. 때문에 물의 표면에서 머무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 깊이를 버린다. 애초에 대적할 수 있는 깊이가 아니다. 인간의 몸이 얼마나 길든 물속에서 세로로 움직일 수는 없다. 가능한 선이 되어, 가능한 가벼운 면이 되어 건너야 한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아가미를 부러워하게 된다. 숨쉬기의 중요함을 아는 것을 넘어서 실체로서 폐가 있음을 느끼게 된다. 몸에 힘을 빼면 물에 뜰 수 있는데 이때 내 몸 어딘가에 공기주머니가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 수경 없이는 물속에서 볼 수조차 없다. 겸손해진다. 아무것도 자유롭지 않다. 


수영을 하기 전에 간단한 체조를 한다. 대부분 물 밖에서도 할만한 스트레칭이다. 손발은 쭉 뻗는 단계가 있는데 팔을 있는 힘껏 좌우로 뻗는 게 생활하면서 많지 않기 때문에 이 동작이 무척 마음에 든다. 끝까지 뻗어나갈 것 같고, 레인의 끝과 끝까지 닿을 것 같다. 팔이 닿지 않는다는 건 불리하다. 닿아야 그야말로 손을 쓸 수 있다. 숨을 쉴 수 있다. 팔이 끝없이 늘어난다면 안전해질 것이다. <원피스>에서 루피의 팔과 다리가 끝없이 늘어나는 이유일까. 무엇보다 물에서 더 간절했을 능력이다. 수영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소원했을 능력이다. 


접영을 배우고 있다. 접영은 두 발을 함께 움직이며 물을 찬다. 몸에 웨이브를 준다. 유연한 것과 상관없다. 이를테면 뱀의 움직임처럼, 가슴과 엉덩이, 그리고 다리로 움직여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 얼마간의 부피가 필요하다. 내 몸이 두 배쯤 되는 부피가 말이다. 뱀은 물에서의 습관을 간직하고 있다. 몸만을 움직이지 않고 몸 아닌 공간까지 이용한다. 곧 두 팔 접영을 배울 것이다. 가슴으로 좀 더 세게 물을 눌러야 해요. 이런 말들이 좋다.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다. 다른 언어 배우기. 바다를 보면 이젠 잠시나마 떠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던 세계가 한 시간쯤은 몸을 담가도 아무렇지도 않을 곳이라고, 안전하다고 느껴진다. 한 뼘쯤 팔이 길어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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