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수아/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자음과모음 아야미, 나는 잠에 몰려 하루를 적어. 별것도 아닌 일 몇 개와 도저히 적지 않을 수 없는 일 몇 개를 불성실하게 써. 통째로 옮겨 놓을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바닥에 배를 깔고 턱을 괴는 것은 필수야. 일기를 적는 몇 가지 원칙. 1. 간신히 기억할 수 있을 정도로만, 2. 가장 중요한 내용은 덜어내고. 진심이 촌스럽게 잘려. 사방에 흩어져. 몇 개는 그 날의 꿈 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 같아. 버린 마음들은, 현실에서 질식하는 진심은 살아남으려고 몸을 틀어. 아야미, 나는 잠에서 일어나면 꿈을 적어. 꿈이 오래지 않아, 없었던 일처럼 완전히 사라지는 것 같다, 는 허무.를 허무려고. 잠이 덜 깬 상태에서 띄엄띄엄 적어가. 정성스럽게 한 페이지를 다 채우는 날도 있..
배수아/ 알려지지 않은 밤과 하루/자음과모음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연히 알게 된 '김철썩'이라는 시인이 나에게 시집을 선물하더군요."극장장이 잠시 사이를 두고 아야미에게 말했다."'김철석'요?""아뇨, 철썩, 김철썩.""설마 본명은 아니겠지요?""나도 그렇게 물었더니 자신이 만든 필명이라고 했어요.""왜 그런 이름을 지었는지도 설명하던가요?""자신의 관 위로 흙을 퍼붓는 소리랍니다." 58아야미는 웃지 않았다. 그녀는 말없이 조심스럽게 포크로 접시를 더듬다가 마지막 양고기 조각을 입에 넣었다."그는 이런 말도 하더군요. 자신은 타인을 설득하는 일에 한 번도 성공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고." 극장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래서 항상 뭔가 말을 걸면, 그 대답으로 세상은 흙을 한 삽 떠서 그의 무덤에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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