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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전도 드세요

_봄밤 2014. 3. 15. 18:14




화창한 주말이라, 빗소리가 필요해서 지글지글지그ㄹㄹ. 전을 부쳤다.  반죽을 개고 김치를 썰고 팽이 버섯도 좀 썰어 넣고 깻잎도 잘라 넣었다. 큰 양푼이에 가득 반죽을 하니, 한 시간 넘게 전을 부치게 됐지 뭔가. 열너덧장은 넘게 나올 듯 해서, 한 김에 빌라 사람들에게 나눠주면 좋겠다 싶었다. 나는 전을 부치며 '어머나, 왠 전이에요?'하는 반응부터 '그런거 안먹어요' 라는 대답에는 어쩌나, 찢어 먹었다. '요새 이런걸 돌리는 사람도 있네' 힘을 냈다가 '아; 고맙습니다'라는 아주 미지근한 대답까지, 전 주는 상상을 했다. 이 빌라에는 총 11세대가 산다. 옆집과 우리집을 빼면 아홉집. (옆집은 주인집으로 사이가 나쁘다) 한 장씩 노나주면 딱 좋겠구나 열심히 부쳤다. 10장을 부칠때 쯤 처음에 부친 전이 식어가고 있어서 처음 부친 두 장을 다시 데웠다. 그러나 오늘은 황금 주말, 어제는 무려 화이트 데이+토요일, 몇 집이나 집에 있을까 문을 두드렸다.


결과 : 나는 딱 한 집의 문만 열 수 있었다. 볼 발그레한 대학생으로 감사하다며 이사오셨냐며 전을 받아줬다. 나는 산지 일년이 넘었다고 했다. 생각보다 당황하느라 내가 어디 사는 사람인지 얘기를 못했다. 그냥 이 빌라 어디에서 사는 사람이라고 알겠지...그리고 내가 자주 가는 편의점에도 갖다줬다. 여기는 아주 조용한 동네라 편의점이 딱 두 군데 밖에 없는데, 그나마 하나는 멀리 있어서 가까운 이 편의점만 들린다. 그런데 오늘은 처음보는 알바님이 계신게 아닌가(!) 나와 그녀는 아주 당황해서 매대에 서 있었다. 저는 이 동네 사는데요, 편의점을 자주 이용해요, 전을 부쳤는데 드셔보시겠어요? 라는 하나도 인과가 없는 이야기를 했다. 그녀는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다가 아, 그러시구나 하면서 고맙다며 전을 받았다. 나오면서 편의점을 이용하러 들락거리는 사람 때문에 전을 잘 먹을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는데, 삼십분도 안되서 내가 그 편의점에 들어가 물건을 고르고 나오는 사태(?)가 일어났다. 방해꾼이 되었다니.


사실 아랫집 롤쟁이 돼지녀석에게도 전을 주려고 갔었는데, 문틈에 어떤 봉투가 끼워져 있어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 집에서 나오지 않았든가, 집에 없든가. 둘 중에 하나다. 며칠 전부터 우편함에 편지가 수북하고, 원래 이름이 무엇인지 모를 정도로 다양한 이름이 함께 꽂혀 있어서 무슨일인가 턱을 괴었었다. 아무래도 학교를 다녀야 해서 바쁜것인지? 하얀 봉투는 물론 오늘 끼워있던 것이겠지? 발길을 돌렸다. 그 봉투 무슨 고지서가 아닌가 싶어서 앞 뒤를 살폈는데, 그것은...바로 전도 봉투였다. 

 

돌아와 한 집 밖에 못줬어, 라고 하니 석이는 어떤 집? 하며 눈을 반짝였다. 전 주러 간다니까 '참 할일도 없다'라는 표정으로 바라봐 놓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다. 누가 사느냐, 어떤 반응이었냐, 궁금해했다. 이층에 사는 사람이고, 고맙다며 받았다고. 석이는 그렇냐며 상기된 얼굴로 서성였다. 전, 남은 것 좀 먹을래? 석이는 저녁을 먹겠다고 했다. 사실 아까 두 장이나 먹었지.


가스레인지 주위를 청소하며 왜 문을 열지 못했나, 생각했다. 더럽게 안지워지는 기름때를 문지르며 문제는 바로 노크에 있지 않았나, 깨달았다. 주말은 전도하시는 분들이 분주하게 문을 두드린다. 주로 여성분들로, 네 다섯명씩 한 조로 다니시는데, 그들은 부드러운 노크로 문을 두드리지만 대부분은 열지 못한다. 그래서 봉투나, 말씀이 적힌 브로셔(?)를 문틈에 꽂아 놓고 가는 것이다내 노크가 전도 노크와 아주 유사했던게 패인이었다. 점잖게 "똑똑똑." 세 번 두드린다. '계세요?' 하는 것까지 똑같았다! 이런, 앞으로는 두 손을 가슴 앞에 쥐고, "똑또또 똑똒?" 문을 두드려야지. 전 드세요, 맛있거든요. 라는 말도 못해보고 남은 전을 다 먹느라 미리 저녁이 부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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