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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

근황

_봄밤 2014. 3. 6. 21:48




두 통의 전화를 받았고, 두 통의 전화를 했다. 두 통의 전화는 친절했지만 머리가 지끈거렸고 내 옆에 앉은 사람은 내 원함과 상관없이 자꾸 바뀌어갔다. 다리가 길고 야윈 거미가 느릿느릿 움직였 다리가 길고 야윈 거미의 삶은 다리가 길고 야윈 거미,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겨울 나무 꼭대기에 검은 비닐봉지 그 나무 중간께에 흰 봉지가 서로 다르게 부풀어 가는 걸 쳐다보았다. 막아놓은 길은 인도를 부수고 도로보다 한참 낮은 흙길을 걸었다. 멀리서 도로와 도로사이 오래 서있던 나무가 차례로 눕고 있었다. 오래된 장면 : 나무는 쓰러지며 풍경 치웠 둥그렇게 말린 뿌리가 말라 있었고 건조한 손을 몇 번 비비며 길을 건넜다 다시 잠들라는 듯 쌀쌀한 경칩직업 : 란에 '사람'을 지우고 '사람을 삶'이라고 썼다. 장래희망을 들키면 안되는데 석이가 듣더니 피식 웃으며 제 방으로 들어갔다. 


나를 구분하지 못하는 삶, 나를 잊지 말라는 삶, 그러나 안부는 나를 잊는데서부터 온다. 다리가 길고 야윈 거미는 제 다리의 갯수를 세며 옆으로 이동했다. 하나도 빠트리지 않았다. 하나가 모자랐지만 모두 끝까지 셈했다.


문득은 [문득]으로 소리난다. 일단락은 [일딸락]으로 소리난다. 말이 얼마나 우습기 쉬운 것인지, 발음해 보았다. 봄밤[봄빰]으로 소리난다. 부르지 않을 때 아름답다. '문득', 이나 '야', '기', 같은 것이 되고 싶다 뜻, 없고 싶다.


도로를 부수는 안전모를 보았다. 기계와 바닥에서 시작한 굉음이 기계와 바닥을 지나며 울리고 있었다. 기계와 바닥을 붙들고 있는 안전모. 그 아래 손을 넣어 귀를 가져가고 싶었다. 너무 많은 소리들, 한 사람에게 너무 큰 소리들. 소리가 나누어 진다면 좋겠다. 원하는 것만을 듣는 너무나 조용한 귀들, 소리를 가져가 주면 좋겠다. 원하지 않는 너무나 큰 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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