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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중에는 소리를 내는 종이 많은데, 그 조상들도 오래전 옛날부터 소리를 냈다는 사실이 화석을 통해 밝혀졌다. 이 조상 게는 줄과 채를 가지고 있어서 이것을 한데 비벼댐으로써 바다 속에 울리는 자기만의 음악을 연주했다. 꽃게들에게 이 음악은 같은 종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수단이었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그 후손들이 연주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는 것을 보면 그 방법은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현생 꽃게의 절반 정도가 비슷한 악기를 활용한다. 그렇지만 꽃게는 소리 말고도 다른 선택압력에 굴복함으로써 그 다양성을 크게 증가시켜왔는데, 그것이 햇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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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 중 한 집단은 그들의 음악적 재능을 계속 지켜나갔지만, 나머지 집단은 소리 내는 능력을 서서히 잃어가는 동시에 빛을 반사하는 능력을 조금씩 획득해갔다. 이 집단이 색을 진화시키면서, 소리를 내는 데 쓰였던 줄과 채는 점차 축소되어 완전히 사라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들의 진화 초기에 그 껍데기에서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여러 개의 층이 점점 얇아지면서, 전반적인 껍데기 두께를 유지하기 위해 층의 개수가 많아졌다. 이 층들은 껍데기의 강한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다층 반사막을 형성했다. 껍데기가 무지갯빛을 띠기 시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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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갯빛을 진화시킨 꽃게도 소리 내는 능력이 퇴화되었기 때문이다. 시간이 진실을 말해준다. 그러나 그 이점들은 지구의 특정 지역에, 아름다운 꽃게가 사는 지역에 한정된 것일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지역의 포식자 물고기들에게는 '커다란 귀'가 있어서, 꽃게로서는 침묵하는 편이 최선이었는지도 모른다.
p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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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현실적으로 가능한 한계 내에서 가장 큰 눈을 가진 동물로는 멸종한 오프탈모사우르스Ophthalmosaurus가 있었다. 돌고래처럼 생긴 이 파충류는 몸길이가 3~4미터 정도였다. 공룡들이 육지에서 큰 몸집을 불려나가는 동안, 오프탈모사우루스는 바다에서 카메라 눈의 기록을 세워가고 있었다. 이 동물은 실제로 축구공 크기만한 눈을 가지고 있었으며, 수심 500미터가 넘는 바다에서도 그 눈을 이용했다. 이 파충류는 포식자를 피하거나 깊은 곳에 사는 먹이를 잡기 위해 깊이 잠수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불행히도 오프탈모사우루스는 잠수병에 시달렸다. 이것은 깊은 곳까지 잠수했던 다이버들이 급히 수면으로 올라올 때 나타나기 쉬운 증상이다. 급히 부상하게 되면 압력이 급격히 낮아지면서 혈액 중에 녹아 있던 질소가 공기방울을 만들게 되고 이것이 혈관을 막아 조직을 죽일 수도 있다. 잠수병은 뼈의 관절에 눈에 띄는 함몰흔적을 남기는데, 이런 흔적이 오프탈모사우루스의 화석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잠수병과 그 영향은 그보다 눈이 작았던 조상들에게서는 훨씬 덜 일어났지만, 깊은 잠수를 좋아하고 눈이 컸던 그 후손은 자신이 가던 진화의 길에서 더 가지 못하고 멈추어버렸다. 오프탈모사우루스는 그렇게 멸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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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74
어쩌면 눈은 비틀거리는 서툰 걸음으로 지구상에 등장했을 것이다. 또렷한 상을 보게 되기까지는 수백만 년 동안 흐릿한 세상을 보면서, 차츰 시각적 정확도를 체계 있게 증가시켜야 했을 것이다.
p298
소리내는 꽃게, 무지갯빛 꽃게, 커다란 귀의 물고기, 침묵하는 꽃게.
바닷 속을 사박거리며 뒤를 따라간다.
깊은 잠수를 좋아하고 눈이 커서 멸종했던 오프탈모사우루스.
눈, 비틀거리는 서툰 걸음으로 등장해서 내게까지 왔구나.
작성 : 2013/08/10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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