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정말 좋았다 김소연 갑자기 우렁차게 노래를 불렀다 연료가 떨어진 낡은 자동차처럼 너는 다음 소절을 우렁차게 이어갔다 행군하듯 씩씩하게 걸었을 거다 같은 노래를 하면 같은 입모양을 갖는다 같은 시간에 같은 길에서 모퉁이를 돌면서 같은 말을 동시에 할 수도 있다 "와, 보름달이다!" 와 같은 모퉁이를 돌아도 꿈이 휘지 않는다는 착각을 나누어 가진다 땀을 뻘뻘 흘리는 눈사람에게 장갑을 끼워줄 수도 있다 장갑차에게 꽃을 꽂아주듯이 가로등이 소등된다 우리의 그림자가 사라진다 저 모퉁이만 돌면 우리, 유령이 되자 담벼락에 기댄 쓰레기봉투에서 도마뱀이 꽃을 물고 기어나오듯이 숨어 있는 것들만 믿기로 한다 병풍 뒤에 숨겨진 시신처럼 우리는 서로의 뒷모습이 된다 정말 정말 좋았다 , 2013 ----- 가장 좋은 ..
내부의 안부 김소연 엽서를 쓰고 있어요 너에게 쓰려다 나에게 오래전에 살았던 주소를 먼저 적었어요 엽서의 불충분한 지면에 고양이가 와서 앉았어요 고양이가 비킬 때까지 연필을 놓고 고양이가 비킬 때까지 연필이제 그림자를 껴안은 채로 누워 있는 걸 바라보다 연필과 연필의 그림자 사이를 기어가는 개미를 지켜보았어요 아침에 세면대 속에서 만났던 두꺼비에 대해 엽서를 쓰려다 거울 속에서 보았던 검은 얼굴에 대해 쓰고 있어요 친해질 수 없었던 얼굴과 친숙해져버린 천한 사람에 대해 빵 부스러기로 축제를 여는 개미와빵에 잼을 발라 허기를 비켜가는 나 사이에잠깐의 친분이 싹트고 있습니다 엽서를 쓰고 있어요 너에게 쓰려다 나에게 조금 전에 만났던 누군가를 조금 전의 감정으로 회상하기 시작했을 때 엽서에다 그림을 그리고 있..
1995년, 개인적인 봄 김소연 세상에 대해 나는 당신들의 바깥에 있다.개천가를 둘러싼황색의 개나리들처럼. 또한 헐렁한 반지처럼에워싸며. 살찌지 말거라, 중심이여. 오늘도 나는 외곽을 맴돌며적적하였다. 초가楚歌도 흥얼거렸으므로.당신들에게들리지 않도록 아주 작게 불렀다. 변두리 시장에서아기 거북이 아기 거북을 업고 가는 것을봤다. 업힌 거북도반쯤은 걸어야 했다.펄펄 뛰는 미꾸라지들. 가장 큰 놈 한 마리는죽었다. 늘씬하게 뻗어 아무렇게나 출렁이는,그의힘없는 전신全身. 작은 놈들이 마구마구 넘나든다.좋은 풍경이다. 풀들은 다 같이 피어야 한다고선동하지 않았다. 저 혼자황폐한 이 대지에 여린 주먹을 짚고 힘껏제 무릎을 편다. 각자가 그렇게핀 것이다. 무더기무더기, 그런 봄나물을 사기 위해좌판 앞에 머물렀다가반..
오키나와, 튀니지, 프랑시스 잠 김소연 우리가 갈 수 있는 끝이 여기까지인 게 시시해 소라게처럼 소라게처럼 우리는 각자 경치 좋은 곳에 홀로 서 있는 전망대처럼 높고 외롭지만 그게 다지 우리는 걸었지 돌아보니 발자국은 없었지 기었던 걸까 소라게처럼 소라게 처럼 + 신중해지지 않을게 다만 꽃처럼 향기로써 이의 제기를 할게 이것을 절규나 침묵으로 해석하는 건 독재자의 업무로 남겨둘게 너는, 네가 아니라는 이 아득한 활주로, 나는 달리고 너는 받치고 나는 날아오르고 너는 손뼉을 쳐줘우리는 멀어지겠지만 우리는 한곳에서 만나지 그때마다 우리가 만났던 그 장소들에서, 어깨를 겯는 척하며 어깨를 기댔던 그곳에서 "좋은 위로는 어여쁜 사랑이니, 오래된 급류가의어린 딸기처럼"* + 소라게 한 마리가 집을 버리는 걸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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