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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얼마간 굴욕을 지불해야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
황지우, 「길」중에서
그 여자는 분노에 차 있었다. 그녀는 사람들이 김포공항에 내릴 때까지 욕을 멈추지 않았다. 공항 철도에서였다. 대부분 공항에 도착하는 이들이 탔기에 달리 어디서 내릴 수가 없었던 점, 자리를 옮길 수도 있었을테지만 저러다 말겠지라는 안일한 생각에 사람들은 결국 내릴 때까지 그 욕을 다 들어야 했다. 여자는 너무나 분명한 목소리로 욕을 했는데, 너무나 생생했기에 욕을 듣는 당사자가 곁에 있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러나 상대방의 목소리는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 나는 당장에 그 놈을 찾아가 눈길을 쏴주고 싶었지만 그런건 없었다. 여자는 문쪽 창을 바라보며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건 혼잣말에 가까운 전화였고 아니 어쩌면 혼잣말을, 하고 있던 거였을지도 몰랐다. 여자의 목소리가 갑자기 무너지거나 그래서 혹시라도 울게되면 조금은 이해해보자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여자는 일관된 톤을 유지하며 욕하기를 멈추지 않았다. 대상은 그의 전애인이거나 현재의 애인이었을텐데, 물론 아버지나 큰아버지, 남동생, 혹은 언니라는 설정도 가능하다. 써야할 말이 얼마나 많아질 지 모르므로 이런 가정은 넣어두자. 여자는 주로 두 개의 문장을 이용했다. 두 문장은 앞뒤를, 선후를 이끌고 보완하면서 그녀의 감정을 순환하고 있었지만, 문제를 해결하기엔 적합해 보이지 않았다. 주요하게 쓰인 단어는 '거지새끼', '훔치다', '돌려놔', '거지새끼냐?', '몰래 가져가?', '있는 놈이 더 하다' 였다. 더 많은 욕이 있었지만 적을 필요는 없을 것 같다... 그때는 당연히 그 '새끼'가 여자의 현물을 훔쳤다고 생각했으나, 지금 생각하니 여자가 털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다른 것일 수도 있다. 여자는 짐이 가득했고 김포공항에서 내리지 않았다. 그렇다면 그녀는 인천공항에서 내렸을텐데. 남아있는 사람의 정나미를 완벽하게 떨구는 전화, 어디론가 떠나는 채비가 출중했다. 지금 나는 그녀의 전화가 실은 통화를 가장한 혼잣말이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혹은 여자의 꿈속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여자는 꿈속이라서 창피함도 없이 욕을 이십분 동안 할 수 있었다. 여자의 꿈에 관객으로 있었던 나는 이 여행이 엉망일수 있겠다는 전조를 조금 더 확실히 감지하고 있었다. 하나부터 십일까지 엉망을 완성하기 애쓰던 사람처럼, 엉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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