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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는 키가 컸다. 연두색이 촘촘이 가지위에 앉았다.
햇빛은 먼 곳에서 내려왔다. 머리카락이 점점 따뜻해진다
집에 돌아오면서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었다. 실패를 증명해냈다는 것. 돌아다니면서 얻은 진실은 이것 하나였다. 서류 몇 개를 꺼내서 죽죽 찢어 쓰레기통에 넣었다. 버스가 와서 미쳐 다 버리지 못했다. 서점에서 운 좋게 발견한 초판책을 꺼냈다. 오래된 작품, 나온지 근 이십년이 되가는 단편이 바로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단편 하나를 읽고 창 밖을 구경했다. 사실 뭐가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태평한 것이었다. 무엇이 지나갔는지 잘 생각나지 않는다. 햇빛이 벌써 따가워 미간이 좁아졌던 인상만. 건너편에 전화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 탔는지 모르는 치마 짧은 여고생. 게임을 지운 엄마 존나 짜증난다고 투덜거리면서 남자친구에게 과자를 사달라고 했다. 바스락 거리는 것이 먹고 싶다며 '꼬깔콘같은 걸루' 귀엽게 눙쳤다. 그럴 생각은 없었지만 목소리를 따라 모르게 입을 뗐다.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내 안부를 물었다. 그 사람은 네, 선생님, 하며 처리가 어떻게 되고 있는지 알려주었다. 저희가 확인을 못했네요. 내일 처리될 겁니다. 나는 하마터면 알지도 모르는 사람 앞에서 말이 아닌 것을 터놓을 뻔했고, 그 사람은 내가 울면 당황한 목소리로 괜찮으세요라고도 할 것 같아서, 정말로 그렇게 물어보면 어떡하지, 그땐 대답을 뭐라고 해야하지 생각하다가그 말들을 꾹 눌러 '알았다'고만 했다. 잠깐의 공백. 무어라 말을 할까, 그만두는 것이 느껴졌다. 스타킹을 벗고 다리를 주물렀다. 몇 번을 주무르다가 '주므르다'가 맞는건지 한 번 써봤다. '므르다'를 발음하며 길게 찢어지는 입. 싱겁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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