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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준벅>을 보고

_봄밤 2017. 3. 5. 16:19



화랑에서 미술품을 수집하고 경매하는 메들린. 그녀는 우아하고 똑똑하며 다정하다. 메들린은 조지라는 남자를 만나는데, 이들의 만남은 운명적으로 그려지지만 그 그림은 오분만에 끝난다. 별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다. 영화의 초점은 엉망진창인 조지네 집이다. 이들은 만난지 일주일만에 결혼한 후 육개월 만에 조지네 집으로 '어쩔 수 없이' 잠시 내려오는데 조지가 고향집을 너무 사랑한다거나 하는 이유는 아니고, 메들린의 일 때문이다. 아직 알려지지 않은 화가가 조지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살고 있던 것. 부부는 계약을 성사시킬 겸 겸사 겸사 내려온다. 


오랜만에 집에 오는 큰아들을 초조하게 기다리는 엄마가 있다. 그 옆에는 평소에 읽지도 않는 신문을 보는 조지의 동생 조니. 이 집에는 다정함이라는 게 없다. 짜증과 불만과 냉소가 팽배하고 이해심이라고는 조금도 없다. 신문에 조금도 집중하지 못하는 조니는 잠시 후 담배를 찾는데. 사실 담배는 굉장히 사적인 소지품 아닌가. 그런 담배를 누군가에게서 찾는 것도 우습고, 그걸 찾아줄리 없는 엄마의 일갈이 떨어진다. 냉장고 위에 있다며 소리를 지른다. 냉장고 위에는 정리가 안된 물건이 가득하다. 조니는 담배를 겨우 찾지만 다른 물건들이 후두둑 떨어진다. 조니는 떨어진 물건을 주워서 다시 제 맘대로 냉장고 위에 올려 놓는다. 이게 이 집의 질서다. 


아빠 유진은 말이 굉장히 없다. 말이 없으니 감정 표현이 서툴다. 하지만 누구보다 더 큰아들의 방문을 기다려 그는 집 밖에 나가 기다린다. 집 앞에 세워둔 차 뒤로 아들이 도착했다. 반가운 마음에 차안을 살피니 아들은 아내와 진한 스킨쉽 중. 말없는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온다. 참, 앞 장면에서 간이 침대에 바람을 넣던 이가 바로 유진이었다.  


이 집에서 유일하게 밝고 긍정적이고 낙천적인 사람은 애슐리인데, 출산일이 곧인 만삭의 임산부로 조니의 아내이다. 조니는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고, 고등학교때 만난 애슐릴와의 만남을 크게 후회하고 있다. 아이가 생겨서 어쩔 수 없이 함께 있다는 식인데, 애슐리는 그런 조니에도 불구하고, 이런 집의 불안한 분위기에서도 생활을 잘 해나간다. 무뚝뚝하고 차가운 시엄마지만 알게 모르게 자신을 챙겨준다는 것도 알고 있고, 태어날 아이를 위해 방을 꾸리고 요람을 꾸리는 이는 그렇게 말이 없는 시아빠라는 걸 안다.


이곳에 처음 도착한 이들에게 엄마가 하는 말이 '준비한 게 없어. 씨리얼먹어.' 이 집의 삶의 방식이 이렇다. 무례한 것도 정도지만, 씨리얼은 마음 좋게도 두 종류다. 큰 아들은 별 말 없이 씨리얼 중 하나를 뜯어 먹는다. 이후로부터 조지는 실종이다. 영화 내내 잠을 자거나, 주유를 하러 가거나, 이 집에 붙어 있질 않는다. 메들린은 이 집에서 성심을 다해 다감하다. 우리의 애슐리만이 메들린을 반기며 이야기를 나눈다. 


메들린은 은연중에 나와 남편 조지, 그리고 이 집의 사람들을 나눈다. 조지는 그럴리 없어라고 생각하지만 고향집에 머무르면서 자신이 알지 못했던 조지의 모습을 본다. 교회에서 성가를 부르는 모습이라든지, 마요네즈를 숟가락을 퍼먹던 어린 시절이라든지. 메들린은 깜짝 깜짝 놀란다. 


영화에서는 소리가 무척 민감하게 나온다. 미세하게 다른 방의 소리가 들리고, 듣는 모습이 나오는 것. 작은 장치, 소품들로 영화는 이야기가 무척 풍부하다. 


내내 가족들의 바깥에서 있기를 원했던 조지가 애슐리의 일에서는 갑자기 제일 안 쪽의 가족행세를 하며 그 안에선 메들린을 들여보내지 않는다.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 자신의 다른 모습을 알아채지 않았으면 했지만, 중요한 순간에 가족으로 포섭하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 메들린은 조지 없이 있을 때 가족의 바깥에서 맴돌고 조지가 있을 때는 조지 때문에 가족들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리고 집을 떠날 때, 얼른 떠나고 싶었어. 라고 메들린에게 말하는 조지.

 

준벅은 여름내 잠깐 왔다가는 벌레를 말하기도 하고, 이들내 부부를 이르기도 하고, 애슐리가 짓고 싶었던 아이의 이름이기도 하다. 모두 떠났다. 애슐리는 앞으로 어떤 삶을 살게 될까? 조니는, 메들린은. 


이해할 수 없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일로 두는 것. 상처를 그냥 그대로 보이는 것. 낫게 도와주거나, 함부로 안지 않는 것. 


영화에서 <걸어도 걸어도>가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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