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주말 하루는 산을 다녀오고, 하루는 수영장을 다녀왔다. 그건 잠시 여기를 떠나게 도와주고, 동시에 이 시간에 머물도록 한다. 삼십분 정도만 걸으면 산은 상상도 못했던 것들을 알려준다. 눈을 고스란히 맞고 서 있는 나무들. 더러는 꺾여서 쓰러진 나무. 눈이 나무에 내리는 방법들. 녹는 눈과 녹지 않는 눈의 위치. 그리고 오늘 나와 같은 풍경을 보러 올라온 사람들. 먼 곳에 쌓인 눈이 보였다.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지만 그 곳에 눈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언제였더라. 무슨 모임 발대식을 산 위에서 했는데 사람들이 돌아가면서 한 사람씩 포부를 말했다. 기합을 주면서 이야기해서 다 들렸다. 내용은 대동소이했다. 열심히 하겠다는 말들이었다. 연극 같은 데가 있었다. 자기 소개를 하면서 잘하겠다는 다짐을 모두가 들리도록 열창하다니. 거기 있다가 나도 모르게 관객이 되었다.
가끔은 옆구르기를 하고 싶다. 그것을 생각만큼 잘 할 수있는지 궁금하다. 몸이 한 바퀴 돈다. 부자연스럽게 머리가 흐트러지고. 내가 서 있던 곳보다 조금 떨어진 곳에 멈춘다. 옆구르기를 할 수 있을만큼의 공간이 집에서는 잘 나오지 않을테니 바깥에서 해봐야겠지. 누군가 봐주면 좋겠다. 웃으며. 혹은 진지하게. 옆구르기가 잘 되었어. 혹은 영상으로 남겨보이며 배꼽이 다 보였어. 라고 말하거나, 다른 사람들이 이상하게 봐주어도 그곳만은 이상하지 않게 만들어주는 한 명이 있으면 좋겠다. 머리 속으로 옆구르기를 한다.
새로운 카페에 와보았다. 사람들이 삼삼오오는 아니고 이이삼삼 오기 좋은 곳인데, 다른 곳은 모두 수리했지만 창문만은 교체할 수 없었는지 홑창살이라고 불러도 좋을 알루미늄 창문이 서늘하고 크다. 나는 창가쪽에 앉은데다가 출입구를 등지고 있어 등과 팔이 시린 상태로, 좀전의 옆구르기 하는 상상을 한다. 겉옷은 누가 받아줘야 할 수 있겠지. 그렇다.
나는 옆구르기같은 걸 가끔 하고 싶고 그걸 할 때 창피해하지 않고 왜 하냐고 묻지 않고 진지하게 옆에서 잠자코 겉옷을 받아들고 있어줄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 내 옆구르기가 어땠는지 이야기해주고, 봐주고, 이상하다고 이야기 하지 않을 사람. 옆구르기가 끝나면 다시 가던 길을 간다. 그 사람이 덤블링을 하고 싶어 한다면 역시 가던 길을 멈추고 옷을 들어주겠지. 옷에 뭍은 흙을 이야기 해준다.
선물로 워치를 받았다. 애플워치는 아니고 그냥 적당한 것 아무거나 골라 달라고 해서 사용하고 있다. 내 수면 정보와 호흡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고 생각하면 유쾌하지 않아 그동안 사기를 꺼려했는데, 막상 차고보니 수면이 어떤지 모니터링 해주는 게 신기하다. 잠을 봐준다는 것. 기계가 나의 잠을 봐주는구나. 어떻게 구분하는지 모르겠는데 깊은 잠과 얕은 잠을 구분하고 렘수면을 기록한다. 수치를 보며 그렇구나 한다. 잠을 자는 건 좋다. 나를 이상하고 새로운 곳에 데려다준다. 꿈이 잘 기어나지 않지만 꿈을 꿀 수 있다는 건 재미있는 일이야. 한줌을 기억하고 있다가 동생에게 얘기하는 것도 좋고.
올해 나는 실패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살았다. 그런 생각은 작년부터였다. 친구는 웃으며 이렇게 말한다. 너는 너무 경직되어 있어. 삶의 방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아. 이것저것 해봤으니 정말 해보고 싶은 걸 하는 게 어때?
오늘 자유수영에는 잘 못하는 사람 2명 잘 하는 사람 2명이 있었다. 치자면 나는 잘 못하는 사람 쪽에 속했다. 잘하는 사람이 있어 수영 하는 것을 관찰했다. 양쪽 스트로크 7번 만에 20미터를 갔다. 나는 12번 정도 나왔다. 팔꿈치가 정말 높게 들려서 가는 호쾌한 수영, 매회 턴을 하며 물살을 다 뒤집어 놓는다. 그 근처에서는 물살이 세서 내 수영을 흐트러지게 하는 사람이었다. 수영을 잘 하는 사람을 만나서 구경했다. 기대하지 않았던 일이 작게 작게 일어난다. 잘 못하는 사람중 한 명은 정말 못했다. 팔꿈치가 너무 낮게 들려 수면에 거의 닿아 갔다. 그 때문에 팔이 완전히 앞으로 뻗어지지 않았고, 왼쪽 롤링이 특히 잘 안되었다. 하지만 꾸준히 돌았다. 네 명중 가장 힘들었을 것이다. 저렇게 하면 안되겠다고 생각하며 팔꿈치를 높게 들고 왼쪽 롤링에 신경 썼다. 잘하는 사람도, 잘 못하는 사람도 도움을 준다.
정말을 찾아 다녔지만, 요새는 옆구르기 같은 것이고, 특별히 잘하고 싶지는 않고 그냥 해보고 싶다.
'이후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방한부츠 검색하기 (0) | 2024.12.09 |
---|---|
멀리 파도가 치는 야외 (1) | 2024.12.04 |
2024 연말정산 가장 잘 산 것, 올해의 책, 음식, 드라마, 유튜브 (1) | 2024.11.25 |
연말을 보내는 방법 (4) | 2024.11.19 |
소설 추천하기 (4) | 2024.11.18 |
- Total
- Today
- Yesterday
- 이병률
- 차가운 사탕들
- 이문재
- 피터 판과 친구들
- 이영주
- 지킬앤하이드
- 1월의 산책
- 일상
- 책리뷰
- 대만
- 열린책들
- 후마니타스
- 궁리
- 배구
- 현대문학
- 이준규
- 진은영
- 문태준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네모
- 뮤지컬
- 희지의 세계
- 민구
- 상견니
-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 이장욱
- 정읍
- 서해문집
- 김소연
- 한강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