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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지갑에는 지난 세기에서나 사용했을 법한 지하철 표가 한 장 들어있다.

 

재작년 파리에서 쓰고 남은 것이다. 지하철을 타러 계단에 내려갈 때마다 파리의 지하철을 떠올린다. 넓찍해서 내가 상상하는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있는 한국의 지하와는 달리 파리의 지하철은 땅속을 겨우 파놓았다는 느낌이다. 에스컬레이터는 당연히 기대할 수 없고, 엘레베이터는 소수 있으나 그것의 이용을 기본값으로 놓기엔 어렵다. 이용하지 못하는데 있긴 있다라는 마음을 갖는게 맞다. 간신히 지하철이 다닐 수 있도록 이 정도를 파놓았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

 

으레 파리는 더럽다거나, 지져분하다는 말이 있는데 그건 다른 단어의 층위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너무나 오래된 것이 늘 지금에 머문다는 고단함에 덥혀 있다. 고단함은 그 지하철들과 또 굴같이 파놓은 지하도와 그곳을 매일 다녀야 하는 사람들이 나눈다. 

 

2. 파리에 도착했을 때 놀랐던 것은 드라마에서나 나올법한 찬란한 날씨와, 거대한 나무들이 도시 한 가운데 있다는 사실과, 공원이 끝없이 길고도 넓은데 그 중에서도 과거의 건물들이 계속 그 자리에 서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고풍스러운 건물들로 둘러쌓인 도시에는 놀랄만큼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나는 이런 인구밀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게 적은 사람이 이 좋은 것을 누리고 있다니! 비행기를 열 몇시간이나 타고와야 알 수 있었다니!

 

3. 파리를 찾아왔을 뿐인데, 예전의 세기에 도착했다는 이중의 느낌을 받았다.

 

4. 거기 사람이 있다고 인지하는 것. 어떤 가게에 들어가도 인사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5. 돈을 주고 받는 일에 트레이가 사용된다. 예의란 무엇일까? 시간을 쓰는 것이다. 보다 더 쏟는 시간. 

 

6. 이 간단한 몇 가지를 잃는 것은 품위를 잃는 일. 품위를 잃는 일은 사람이 아니게 되는 일. 

 

7.  파리에서 만난 건너편의 모든 차들은 나를 발견하자마자 섰다. 신호등과 상관없이 먼저 섰다. 도로는 차의 것이 아니라 인간의 것이었다. 

 

7-1. 새벽부터 진행되는 일정이 있었다. 지하철을 타러 거리를 걸었다. 그 거리의 1층은 모두 명품 매장이 있는 곳이었다. 동이 트기 전, 어떤 흑인 남자가 매장의 유리벽을 주먹으로 때리는 것을 보았다. 주변은 몹시 조용했고, 그 유리가 깨지는 일은 없었겠지만 이상한 상징 같았다. 나는 노란 불빛의 메트로 표지판 아래로, 지하철 역사로 들어갔다. 

 

8. 세느 강을 유람하는 배를 탔었다. 그것은 외부인에게는 낭만의 극치로, 노을이 질 무렵 타서 해가 지고 나서 내리는 것이 가장 좋은 시간대였다. 불이 들어오는 에펠탑을 배 위에서 지켜본 시간이었다. 

 

환호의 소리를 지르고, 사진을 찍는 혼란의 시간과 내릴 시간이 맞닿았다. 여기까지 나오지 말라는 제스쳐가 있었고, 그것을 어겼다는 이유로 등산복을 입고 있던 한국인을 밀쳤다. 그녀는 배 위에 쓰러졌다. 명백히 인종차별이었다. 그러나 백인 남자들의 위압감, 말이 통하지 않음, 배 위라는 특수한 상황, 안전상의 이유 등이 보이지 않는 기류를 형성했고 별 말 없이 쓰러져 있던 사람이 일어나고 곧 우르르 배를 내렸다. 아마 백인이었다면, 쓰러지는 일은 절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 배위에 있던 모든 사람이 별다른 항의를 하지 못했다. 인종차별이 없다는 것은 환상이다.  

 

9. 나라고 그런 일이 없었을까. 니스에서는 주문을 받지 않았던 일이 있었다. 굉장히 처연했다. 그 가게의 한 사람이 그랬다. 다른 사람이 주문을 받아주었다. 서버는 어떤 업에서든지 인간을 마주하는 첫 번째 사람으로서, 업의 특성을 이해하고 고객을 대하는 전문성이 있으며 존중받아야하는 직업이라는 사실을 파리에서 뒤늦게 깨닫고 있던 나의 염치와, 너에게는 주문을 받을 수 없다고 취급하던 그 서버의 알량함이 만나는 순간이었다. 

 

10. 그래도 좋았던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 몇시간이 넘는 비행기를 타고(심지어 환승) 낯선곳에 나를 떨어뜨려 놓고서는, 8일을 잠들고 일어나서 그 도시들을 돌아다녔다는 사실이다. 

 

11. 떠나기 전날, 파리에서 파업이 시작되었다. 지하철과 버스 파업이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연금 개혁을 반대하는 파업이라고. 구글맵에 빨간 표지가 나오기 시작했다. 대부분 노선이 멈추거나 배차가 길어졌고, 몇 개의 노선은 정상적으로 운행되었는데, 내가 타야 할 노선이 멈췄다. 파업이 시작된 날은 9월 13일 금요일이었다. 지하철 개찰구마다 사람들이 줄을 서서 무언가를 물어보았다. 나도 물어보았지만, 우리는 말이 통하지 않았다.  

 

12. 날짜의 불길함은 메시지를 넣기 매우 좋았고, 어쩌면 사전에 그날에는 파업이 있을 수도 있겠어, 라고 예측할 수 있었을 법했다. 그러나 나는 몰랐으므로, 당장 다음날 오후 비행기를 타기 위해 어떻게 움직여야 할지 고민했다. 게스트하우스 스텝에게 말해 택시를 미리 말해두었고, 

 

13. 다음 날 7시 30분. 택시가 없다는(!) 소식을 받게 된다. 우버는 전날대비 2배가 넘게 비싸졌고 그건 거의 7~8만원에 달하는 비용이었다. 지하철과 버스가 줄어들자 자연히 도로는 더 막히게 되었고, 나는 북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다행히 숙소는 북역까지 30분 거리였다. 공항에 가는 기차는 운송대수가 줄었지만 운행중이었다. 배차가 줄어들고 플랫폼이 바뀌어서 몇 번을 물어봐야했다. 다행히 기차를 탔고, 공항 인근에 도착했다. 이제 살았다. 

 

14. 여기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공항으로 들어가야 하는데, 셔틀버스가 오지 않았다. 100명도 넘는 사람들이 셔틀버스를 기다렸다. 홍콩에서 왔다는 여자와 잠깐 얘기를 했다. 짐싸기의 달인, 여행의 달인으로 보였으나 그녀에게도 이런 이런 일은 초유의 상황같았다. 

 

15. 셔틀버스가 언제 오는지 알아야 할 것 같은 사람이, 언제 오는지 알 수가 없다고 했다.

 

16. 악몽같았다. 여기까지 온 것도 힘들었는데, 이곳은 완전히 외곽이라 도시로 들어갈 수 없는 위치였다. 공항에 가기만 하면 되는데... 초조하게 기다리던 순간, 마침내 셔틀버스가 도착했고, 말 그대로 구겨져서 탔다. 그 많은 짐들을 들고. 거기엔 여전히 남아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게 내가 될 수도 있었다. 공항까지는 매우 가까운 거리였는데 길이 매우 막혔고, 거기에는 택시가 즐비했다. 공항에서도 일은 일어났다. 수화물을 체크하는 기계가 고장나 수속이 늦어졌다. 드디어 비행기에 탑승. 8일 있었던 것 치고는 많은 것을 겪고 왔다는 느낌이었다. 

 

 

반짝이는 것들을 잊지 않고 종종 적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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