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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이성당의 미영2

_봄밤 2020. 3. 26. 22:09

마음껏 노래 부를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건 어린 나이에도 후련해 지는 일이었다. 성당은 노래를 할 수 있게 했다. 목소리가 아무리 커도 다른 사람은 알지 못했으며 알더라도 그게 흠이 되지도 않았다. 여럿과 섞여도 내 것만큼은 스스로에게 잘 들린다. 노래는 높고 텅빈 곳에서 자유롭게 퍼져서 춤을 추다가 내려왔다. 성당의 시간은 곧 노래의 시간이었고, 그걸 좋아했다. 미사보를 쓴 미영이의 옆모습이 있었다. 별로 친하지도 않으면서, 우리는 옆에 앉았고 어디에 앉든 튀었다. 미영이와 키 차이가 크게 났던 까닭이다.

 

앉으라니까 앉고, 노래하라니까 노래하고, 서라니까 서서 흘러가는 시간에 우리는 둥둥 잘 맡겨졌다.

일주일마다 죄를 생각했다.

 

죄 없는데.

뭐가 죄지. 대수롭지 않은 죄를 겨우 생각해서 고하고 사도신경을 외우거나 묵주기도를 올리라는 벌(!)을 받았다. 창살 너머로 누구인지 다 알 것 같은데 나를 못 알아본다니 믿어 고백하는 것도 좋았다. 동생과 놀다가 싸웠습니다. 밥먹으라고 하는데 한 번에 안와서 엄마가 화를 내셨어요. 친구를 시기했습니다. '시기'나 '질투'등의 단어를 익혀 죄도 고했다. 은총 가득하게도 그건 죄가 아니란다. 라는 말은 들은 적 없지만, 어떤 죄도 진지하게 들어준 곳이었다. 

 

그러나 명백히 죄였을 일은 말해본 적이 없다.

 

시작은 사탕이었다. 미사를 드리기 전에 무언가를 먹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면 성체를 모실 수 없어. 미영이는 먹던 막대사탕을 손으로 잡고 입을 벌려 크게 웃었다. 몰랐어? 정말 몰랐어?

 

몰랐으니까 먹었지.

그렇다고 믿음이 뛰어나지 않았던 나는 성체를 모시지 않아도, 하나님의 빵을 먹지 않아도 큰일 같지는 않았다. 나중에는 알기 때문에 먹었다. 미사 전에 뭘 먹으면 미사를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성체도 못 모시는 걸. 노래는 밖에서도 들리니까. 막대 사탕을 입에 우물거리면서 놀 것도 없는 성당 앞 공터에서 한 낮을 있었다. 사탄이라는 말을 알게 된지 얼마 안됐을 무렵이었다. 나는 왜 나쁜 것을 사탕이라고 부르는지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아마도 미사에 빠지기 쉬워서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한 가장 나쁜 일은, 수녀님의 숙소에 벨을 누르고 도망쳤던 것이다. 혼자서라면 놀이가 아니었을 것이다. 둘은 시시해서 한 명이 더 있었다. 용기라는 남자애도 함께했다. 왜 신부님을 놀리지 않았을까. 당시 신부님은 무슨 요새 깊은 곳에 사셨다. 수녀님의 집은 성당 바로 옆에, 우리가 늘 오가는 공부방(?)근처에 있었다. 겉으로는 그게 수녀님을 놀린 이유 같았지만, 신부님 벨을 누르면 정말 혼날 것 같아서 그랬을 것이다. 진짜 혼날 것 같은거, 큰일이 날 것 같은거 애들도 안다.

 

그렇게 벨을 신나게 누르고 쏜살같이 도망을 다녔다. 다리만 빠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인터폰이 있었지 싶다. 화가 잔뜩 난 수녀님 한 분이 나오셔서 다짜고짜 나를 불렀다. 셋이 놀았는데 수녀님은 다른 의심 없이 나만을 지목해서 혼냈다. 잘못했다는 감정보다 억울했다는 감정이 치민 것은, 죄의 본질에 가까웠다고 해야할 것이다. 벨을 누르고 도망쳤던 일보다, 별다른 증명없이 나를 집어낸 수녀님의 판단에 화가났다. 그야말로 잘못을 감출 생각이 없는 비열함이라고 해야할 것이다. 물론 비열함이라는 단어를 알지 못했을 때였다. '그것을' 감추지 않는다면 상대의 말문을 막히게 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수녀님의 희고 깨끗한 옷이 미웠다. 차분한 회색빛의 치마도 미웠다. 어떻게 저를, 저만 딱 골라요? 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런 모양새로 씩씩거렸을 테다. 길고긴 설교를 들었다. 오후의 해도 길었다. 풀이 죽어 나오니 미영이와 용기는 우리가 늘 모이던 화장실 근처 나무 앞에서 쭈그려 앉아 있었다. 쭈그려 있는 애들을 보니 마음이 풀렸나, 이상하게 그애들에게 화가 나지는 않았다.

 

교복을 입은 후로 성당은 그만 나갔다. 미영이와 더 만날 일도 없었다. 후일을 기약할 만한 사이는 아니었다. 그러나 어떻게 부모님끼리 알게 되어 미영이의 일을 전해 들었다. 미영이네는 읍내에서 작은 가게를 운영했다. 시계가 여럿 걸려있고, 유리 진열장이 가득한 곳. 몇 번인가 가보았지만 오래 있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어두운 초록색의 소파에 앉아 엄마는 머물렀고 가끔은 미영이의 인사를 받기도 했다. 키 크고 얌전하고 어른스럽더라 애. 조용히 인사하고 제 방으로 올라가더라는, 교복을 입으니 정말 다 컸더라하는 얘기를 멀리서 전해들었다. 

 

시계와 금은을 파는 그곳 이름은 이성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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