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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이성당의 미영1

_봄밤 2020. 3. 18. 15:37

하루에 4번있는 버스를 타고 40분 가면 도착하는 읍내. 한참의 언덕을 올라가면 무슨 요새처럼 꾸려진 길가, 좁은 계단을 내려가면 성당이 있었다. 동네라도 지척에 있어 누구나 쉽게 갈 수 있는 교회와 거리의 스케일이 달랐다. 성당은 먼 곳에 딱 한 곳에만 존재했다. 성당에 다닌다는 것의 뜻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한다.

 

반에서, 아니 학교에서 성당에 다니는 애들은 한 손에 꼽았으므로. 그것은 문화의 최전선, 특별함, 걔 성당 다닌대, 라는 소리를 수근수근 들으면서 못들은 척 지나가는 일이었다. 가끔 학교에 쓸데없이 미사보를 챙겨가 이게 미사보야 하며 하얀 레이스를 늘어뜨리기도 했을 것이다. 성당이 어딘지도 모를 아이들도 수두룩했다. 교회밖에 모르는 아이들에게, 일주일에 한 번씩 나간다는 것은, 이루 다 말하기 어려운 우월감 자체였다. 내가 미사보만 자랑했을리가 없다. 포도씨 같은 묵주알을 은연중에 쏟아 보여주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게 멀리 있었으므로, 그리고 동네 친구들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른 학교의 아이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익숙하다 못해 그집의 가계도까지 다 알고 있는 애들이 아니었다. 이건 뜻 밖의 일이었다. 그러나 애들이 노는 일이 크게 다르지 않았듯, 성당은 작은 공동체로서의 기능을 했다. 우리는 만났고, 이름을 알게 되었고, 서로 사는 동네와 집을 대충은 알게 되었다. 일주일에 한 번밖에 보지 않았기 때문에 친해지기는 어려운 시간이었다. 우리는 어지간히 다 컸다고 생각했을, 중학생을 기다리는 어린이들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내 평생 가장 위험한 아이를 만나게 되었더. 그게 바로 미영이다. (가명이다) 그 애는 키가 나보다 두 뼘은 컸고, 당장 중학생 교복을 입어도 속을 것 같았다. 잘 안맞는 키에, 대충 친하게 지냈던 것 같다. 함께 불량한 짓을 했기 때문이다.

 

미사를 빠지고 사탕을 먹거나 나무에 매달리는 일이 거의 대부분이었지만, 성당에는 아무도 그렇게 노는 아이들이 없었다. 미사로 성당 안이 웅장해질때면 우리는 함께 성당 앞 공터의 큰 나무를 구경하거나 시덥지않은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나는 물론 착한 애였기 때문에 성당에 가기로 한 시간에 미사를 빠지거나 하는 생각은 할 수가 없었다. 그건 다 미영이의 생각이었다. 미영이는 정말로 어른에 가까운 애였기 때문에 성당에 왜 나와야 하는지, 그걸 왜 듣고 있어야 하는지, 교리 시간에 왜 앉아 있어야 하는지를 묻는 애였다. 그리고 그걸 묻지 않는 나에게 같이 놀자고 말했다.

 

어쩔 수 없이 안전한 장소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나는 미영이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졌다. 처음에는 미영이에게 속았기 때문이고, 그 다음은 속아 주었고, 종내는 속지 않고 곧잘 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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