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바닷가 마을이었다. 동네는 바다에 있었지만 놀수 있는 바다가 아니었다. 갯에 들어가면 발이 찢어지는, 아픔을 알기 전에 피가 흐르는 바다, 친척이 어렸을 때 죽었다는 무서운 바다였다. 바다가 아름답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었다. 그 정도로 바다를 바라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어른들은 바다를 싫어했다. 지근에 살았지만 바다에 가는 일을 누구도 좋아하지 않았다. 그렇게 먼 바다의 동네는 조용했으나 바로 그 바다로 인해 큰 변혁을 겪는다. 한국에서인지 세계에서인지 서해에서인지, 가장 크다는 대교가 세워졌고 팡파레가 울렸다. 차가 지나기 전에 학교에서 우르르 몰려가 대교를 뛰었을 무렵, 그 주변에 커다란 휴게소가 세워졌다.
거듭 겹치는 무렵으로 나는 성장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엄마는 바로 그 휴게소에서 일하셨다. 그 일에는 머리를 잘 말아넣는 검은 망이 필요했고, 그게 지금도 오래된 화장대 두 번째 서랍에 잘 들어 있다. 어떤 일을 하시는지, 출근과 퇴근이 무엇인지 하나도 알지 못했다. 물어본 적 없고, 말해주기에는 너무 어렸다. 이제와 엄마의 상사와 동료와 후배와 고객을 생각한다. 아이 셋과, 싸움의 나날인 남편같은 걸 생각한다. 그 중에도 지금까지도 진정으로 알지 못했던 것은 엄마가 일을 했다는 게 아니라, 직장인이라는 사실이었다.
그 무렵 우리집에 전기밥솥이 들어왔다. 밥은 식지 않았다. 피곤에 집에 와도 엄마의 일은 끝나지 않았다. 빨래와 청소, 설거지가 모두 엄마의 것이었다. 그 와중에도 초등학교에 절반 무렵, 공부를 봐주거나 학교일에 참석할 수 없었던 동생에 에게 두고두고 미안해하셨다. 온전히 엄마의 보살핌으로 초등학교 시절을 지나온 나와 달랐다.
그 무렵 엄마는 매우 싸우셨다. 아빠는 일하는 엄마를 두고 아주 작아졌다. 엄마는 일을 하고 돈을 벌면서 싸움까지 해야하는 난관을 버텼고, 그 버팀이 무너질세라 우리는 급하게 자랐다. 이곳을 진정으로 떠날 수 있는 대학을 준비할 수 있었다. 피곤과 싸움과 미안함으로 뭉친 그 일을 언제 그만두셨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지진해질 무렵 엄마는 일을 그만 두셨고, 짤랑하고 소리가 나는 금반지 세 개를 손을 펴 보여주셨다.
그건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집을 떠나게 될 우리를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어렸을 때 받았을 돌반지는 한 개도 남아있지 않았다. 아주 어렸을 때 처분해서 구경해 본 기억도 없다. 금반지가 하나도 없는 우리를 위해 엄마는 회사를 다니면서 조금씩 돈을 모으셨다. 뒤따라 바로 대학에 갔돈 동생하나는 금반지에 알레르기가 있었고 막내는 잘 끼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반지 두개는 다시 엄마에게 갔지만, 반지 하나만큼은 스무살 때부터 지금까지 금의 광택을 잃으며 내 손가락에 잘 있다.
-이거 비싼거야.
얼만데?
-십 몇 만원.
우와.
-외지서 길 잃어버리면 이거 주고 택시타고 집에 와. 울지 말고.
돈이랑 똑같은거야.
-(금반지 안쪽을 살피며)그를게.
성당에 대한 에피소드는 사실 끝난 것과 같았다. 나가지 않게 되었지만 성당 소식지는 이따금 날라왔다. 몇 장을 뒤적이면 이성당 광고를 볼 수 있었다. 그애의 부모님이 세레명이 다정하게 써 있는 안내는 그 애 안부를 보는 일 같았다. 그런걸 생각한 소식지는 나만 본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큰 돈을 믿을 수 있게 쓰기 위해 이성당을 찾았던 것이다.
"애들이 셋이에요. 어렸을 적 금반지를 다 팔았어요. 다시 살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금은방, 초록색 소파에 앉아 엄마가 나누었을 이야기를 알 수는 없다. 그 반지 세개는 아빠를 피해서 엄마가 자유롭게 썼던 작고도 큰 돈이었다. 내 손에 있는 한 돈의 금은, 교복을 벗을 무렵 이성당의 미영이를 키웠을 아주 작은 조각이기도 했다. 그 반지를 끼고 대학을 갔다. 그건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을 붙일 수 있는 좋은 소재였다.
-네 번째 손가락에 반지? 애인이 있나봐요.
아니요, 엄마가 주신거에요.
길을 잃으면 택시를 타고 집에 오라고요. 한 돈짜리거든요.
-그래요? 와하하.
재밌는
부모님이시네요.
이런 이야기를 수십 차례 하자 삼십살을 돌파했다. 착한 애의 무리에서 착하게 크지 않게 해준 미영이. 비열함을 만나게 해준 미영이. 어떤 교훈도 없었지만 중요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걸까? 다른 애와 놀수도 있을 것이다. 잠시나마 있었던 미영이와의 일일. 그걸 전혀 모르던 엄마. 무서운 바다. 바다를 지나는 다리, 일하는 엄마. 성당 브로셔에 실렸던 믿음. 미영이의 안부는 그 뒤로 전혀 알지 못했다. 미영이네 집, 이성당에서 산 반지만 잘 남아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 모든 것이 내가 지어낸 이야기라면 좋을텐데.
아멘.
이성당의 미영, 끝.
'이후의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누군가 내 머리를 찧으면 (0) | 2020.06.10 |
---|---|
요즘 보는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하이에나, 보좌관 (0) | 2020.05.06 |
이성당의 미영2 (0) | 2020.03.26 |
이성당의 미영1 (1) | 2020.03.18 |
이성당의 미영 (0) | 2020.03.17 |
- Total
- Today
- Yesterday
- 한강
- 민구
- 책리뷰
- 희지의 세계
- 1월의 산책
- 김소연
- 피터 판과 친구들
-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 서해문집
- 문태준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열린책들
- 네모
- 이준규
- 이문재
- 이영주
- 일상
- 배구
- 궁리
- 차가운 사탕들
- 이장욱
- 정읍
- 상견니
- 이병률
- 진은영
- 현대문학
- 지킬앤하이드
- 대만
- 뮤지컬
- 후마니타스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