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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2018년 11월의 산책

_봄밤 2018. 12. 4. 22:24

오랜만에 다시 시작.

다섯 줄부터.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2018

접어 놓고 싶은 문장이 한 줄도 없다(그것이 이 책에 대한 나의 슬픔이다) 제목과 표지만 남을 만하다. 얕게 시작해서 좋게 끝나기 급급한 글들. 문학에 순교한 자신의 처연함을 아름다운 문장으로 치장하는 처절하게 단 문장들. 편집은 장을 나누는 것도, 글을 분류해 내는 것도 모두 실패했다. 수 년의 시간이 겹치는 글은 고르지 않고, 사유는 물을 다행히 건너가게 된 물수제비 같다. 흥미로운 부분은 작가가 책을 내면서 새롭게 쓴 서문 뿐이다. 그는 젊었을 적, 자신의 치기로 탄생한 책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그러나 전의 책은 재미라도 있었지. 



저지대

헤르타 뮐러/ 김인순/ 문학동네2010

작가를 전혀 알지 못했다. 리커버로 나와서 읽게 되었다. 표지에 현혹되어, 광고에 자주 보여 구매하게 되었으나 표지가 아름다워서, 광고를 볼 수 있어서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아니라면 (내가)이 책을 어떻게 만났을까. 누가 알려주었을까. 늪에 빠져있는 양 숨이 막혀 읽게 된다. 문장이 아니라 단어와 단어를 연결하는 조사 단위로 뚝뚝 거리가 벌어지고 시차가 떨어진다. 그것은 인간의 하루이기도 하고, 한 평생이기도 하고, 돌아가도 다시 반복 되고 말 비극이기도 하다. 그녀는 단어 하나하나를 깎아내어 있어야 할 자리에 올려놓았다. 어떤 단어는 목소리가 없고, 다 떨어진 소매로 웃고 있으며, 술을 마시며 눈이 벌겋다. 몽둥이로 맞으면서 읽는 것 같다. 그녀는 숨을 쉬면서, 이런 글을 썼다. 

2009년 노벨문학상 수상.



나이 듦을 배우다

마거릿 크룩섕크/ 이경미/ 동녘2016

'노화'라는 주제에 사방으로 제대로 맞붙은 연구서. (연구서지만 어렵지 않다) 노화는 동일하지 않다. 계층, 인종, 성적 지향, 젠더 등 많은 수에 의해 전혀 다른 형태로 나타난다. 사회적인 돌봄 문제, 은퇴 문제부터 만연하게 퍼져있거나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연령차별주의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개인적이지 않은 외모, 노화의 얼굴을 다룬다. 특히, 여성의 노화는 남성의 노화와 다르다는 점, 모두들 기피 하는 최종의 곳에 늙은 여성이 있음을 밝히는데, 페미니스트 관점을 노화와 관련된 분야에서 지키기 어려운가, 하는 질문은 아주 유효하다. "늙은 여성은 어떤 말이나 제스처 때문에 늙는 것이 아니라 늙음에 대한 젊은 여성이 생각하는 바를 투사함으로써 늙어간다."



미쓰백

피가 감정이 된다고 믿는 샤머니즘이 있다. 대충 덮어서, 그러다 보면 낫고, 사랑할 수도 있고, 그게 따뜻할 수도 있다고 믿는다. 현대에도 유구하다. 가족이라고 부른다. 온 국가가 '가족'을 장려한다. 그러나 아직도 가족의 안쪽은 잘 말해지지 않으며, 합법처럼 폭력이 벌어진다. 수습은 대개 아버지의 이름으로 아멘하거나 어머니의 눈물이 마르면 일단락 되는 생태이다. 사회의 약자들이 모두 모여 더 약한 자를 괴롭히는 악다구니로서 가족이 있다. 가족으로 말미암은 호칭의 차포 다 떼고 말해보자. 남 행복을 빌어주지 못하고 자신보다 못한 것을 언제나 내 곁에 남겨두어야 내가 덜 불쌍해지는 마음인가. 왜 나보다 더 약한 자를 옆에 두면서, 더 나은 삶을 희망하지 못하면서, 부대끼면서, 괴롭히는가. 다 자란 어른이 아이 적의 연민을 간직하는 것만큼 치명적인 일도 없다는 걸 알게 된다. 

미쓰백의 유년은 아직도 거기 버려져 있다. 미쓰백은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도망쳐야 했다. 자신의 유년을 구하지 못했으며, 그 시기를 돌아가면 아직도 피가 터지고 볼이 아물지 않는 아픔 뿐이다. 어른이 된 미쓰백이 자신의 유년을 구할 수는 없지만, 눈 앞에 있는 아이의 어린 시절은 구할 수 있다. 그리고 나으려면 아파 죽기 직전인 지금 뿐이라는 것을 안다. 아이로부터 자기 자신을 봤다. 이것은 동정이 아닌 연대로 불려야 한다. 폭력을 당한 자들 만이 알아볼 수 있는. 새로운 가족의 가능성. 감정이 피가 된다고 믿는 가족의 시작. 이 서사는 당연히 여성으로부터 시작되어야 했다.



보헤미안 랩소디

경쾌한 거장의 메들리. 마음이 신날 수는 있어도, 울어질 수는 없다. 퀸이라는 높고 밝은 산 아래 반사광을 놓아 바닥이 잡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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