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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영 풍경

_봄밤 2018. 12. 19. 00:15

IM 4세트! 접영-배영-평영-자유영 4세트를 하는데, 출발은 한 팔 접영으로 하는 거였다. 이것은 끝나지 않았고, 바퀴 세는 것은 진작에 잊었고, 앞사람 가는 대로 가고 있었다. 점점 힘은 빠져가고, 호흡은 엉망이고, 어떻게 다시 출발선으로 와서 재정비를 해도 진창으로 돌아왔다. 몇 세트를 했는지 모르겠다. 지친 몸을 이끌고 돌아오자 사람들이 출발하지 않고 대기하고 있었다. 수영선생님은 마지막 사람까지 들어오자, 둥글게 모아 놓고 바깥에는 알릴 수 없는 기밀이 있다는 듯이 작은 목소리로, 허리를 숙여 말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빠르게 어떤 화면이 스쳐갔다. 경기 중인 선수들처럼, 이겨야 하는 상대가 있는 것처럼, 이 수영장을 비추는 스포트라이트가 머리 위에 있는 것처럼. 자, 우리 10분만 버티면 됩니다. 사기가 좀 빠진 것 같지만 십 분만. 지금까지 했는데, 할 수 있겠죠? 다 같이 파이팅 합시다. 우리가 된 사람들은 한쪽 어깨를 비껴 섰다. 둥글게 모인 머리와 그 머리 아래로 작게 생긴 원에 손이 착착착 쌓였다. 한 손씩 올려요. 우리 사기가 꺾인 걸 크게 알릴 필요는 없으니. 작게 파이팅, 외칩시다. 그러자 사람들은 정말로 파이팅을 외쳤다. 모인 손이 가볍게 물을 스쳤고, 그것은 더 이상 언제나처럼 튀기던 물이 아니었다. 힘든 표정이 가시고, 사람들은 웃었다. 웃음이 나왔다. 


이 말은 화면 너머에서, 간혹 경기장 응원석에서 실제로는 한 번도 들리지 않았던 말이었다. 들리더라도 내 것이 아니었던 말이었다. 우리는 선수가 아니니까. 눈과, 온 몸이 털이 곤두서 집중을 하거나 몸 전체가 뛰어 올라야 하는 경기를 그저 멀리서 볼 따름이었으니까. 그러나 그날 아주 가까이에서 서로의 땀을, 지치는 호흡 사이로 사기를 돋우는 수영선생님-코치의 말은 수영장 한쪽을 울렸다. 지친 마음을 재정비하고, 몸이 다시 튀어 오르는 느낌이었다. 


파이팅을 하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이곳은 취미로 수영을 하는 사람들이 매일 어떤 시간에 모여, 한 시간씩 자신의 운동을 하고 순환하는 동네의 수영장일 따름이었다. 시합도 아닌 그저 연습에서 선생님은 한때 몸담았을 경기와 무수한 연습에서 사용했을 말을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에게 건네주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물에 젖은 발로 거침없이 화면 속으로 걸어갔다. 경기 중인 코트로 진입하는 몸, 규칙에 맞는 옷을 입은 몸, 레인에 서기를 '인정' 받는 사람이 되었다. 둘러모인 작은 원과 파이팅이라는 말은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새로운 세계로 초대하는 터널이고, 주문이었다. 나는 파이팅을 외치기도 하는 풍경에 갈 수도 있었다. 그건 정말 신나는 일이었다. 


수영의 룰은, 물에서 빠르게 이쪽에서 저쪽에 닿거나 왕복하는 것이다. 이 레인의 풍경은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지만 언제나 아주 먼 거리 앞에 선다. 동네의 작은 수영장. 수영을 하는 동안 다른 세계에 잠겼다가, 채 마르지 않은 머리로 돌아와 잠이 든다. 조금 다른 꿈을 꾸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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