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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의 글

봉사활동 후기

_봄밤 2025. 10. 1.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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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을 하는 여자가 어떤 물음에 조언을 하는 숏츠를 본 적이 있다. 질문이 화면 중앙 박스에 올라온다. 연인과 헤어졌어요. 너무 아파요. 그러자 화장을 하던 여자는 화면을 보면서 확신에 차서 말한다. 앞으로 너는 그 사람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될거고, 더 아프게 될 거야. 숏츠는 몇 개 되지 않는 질문과 대답을 영원처럼 반복했다. 어떤 것이 먼저 나왔는지 모를 정도였다.

 

그 반복이 생각난다. 주문 같기도 하고 어쩌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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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도서관에서 봉사활동을 했다. 2시간이라는 시간이 매력적이어서 신청했다. 처음에는 도서관에서 책 정리를 하면서 책도 좀 보자는 심산이었다(그렇게 되지는 않았다)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진행하는데, 이 교육이 재미있다. 앞뒤로 코팅된 A4종이 몇 장을 읽고 간단한 문제를 푸는 것이다. 교육시간이기는 한데 교육하는 사람은 없고, 스스로 학습하면서 도서관의 방식, 장서의 규칙을 배운다. 사실상 오픈북 시험이지만 오픈북이라도 이해하지 않으면 어렵다(!) 다 풀고 제출하면 사서 선생님이 채점하고, 오답이 있으면 다시 생각해보라고 알려준다. 그렇게 무사히 필기 교육이 끝나면 실제로 책 다섯 권 정도를 서가에 꽂아보는 실기 교육이 시작된다. 잘 꽂았는지 사서 선생님의 체크를 받으면 교육 종료. 이제 배치된 책수레의 도서를 실제로 꽂으면 된다. 교육하는 힘과 시간을 아끼고, 봉사자에게 스스로 학습하게 만드는 굉장히 효율적인 교육방식이라고 생각했다(심지어 코팅된 종이라서 교육생이 많아져도 종이를 낭비하지 않는다)

 

책을 제자리에 꽂는 일이 주된 업무였다. 숫자와 ㄱㄴㄷ 를 마음 속으로 외면서 작은 숫자에서 큰 숫자로, 기억 니은에서 멀어지는 순으로 책을 정리하고 꽂았다. 두 시간 밖에 하지 않았지만 도서관의 대략이 금번에 파악되었다. 이 도서관은 800번대 책을 가장 많이 읽으며 그 중에서 일본소설과 영미문학을 주로 읽는다. 사실은 그게 다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였다. 사회과학 분야의 도서 중 절반은 재태크 및 경제경영 도서이다. 총류나 철학 도서는 계단에 있어 접근성이 다소 떨어지고, 자연히 책수레에 담긴 책도 적다. 어떻게 숫자가 매겨지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 탐구해보려고 했으나 역시 심도 있게 되지 않았다. 표지를 볼 새도 없다. 도서관에서는 책등이 중요하다. 

 

일하는 동안 틈틈히 질문에 대답하기도 했다. 모두 생각해 보지 못한 질문이었다. 어떤 분은 도서 검색대에서 도서를 검색한 화면을 보여주며, 도서를 찾긴 했는데 이제 어떻게 찾아야 하는 것인지 물었다. 이 도서는 900번대이고, 900번대 도서는 이쪽에 있으니 그 이하 숫자를 찾으시면 된다고 말했다. 어떤 분은 신착도서는 몇 권까지 빌릴 수 있는지 물어보셨다. 아마도 신간 도서에 제한이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이 질문에 마음이 느껴졌다. 신간을 혼자 이렇게 많이 빌려가도 되나? 하는 마음말이다. 어떤 분은 도서를 몇 권까지 빌릴 수 있느냐고 물어보셨다. 너무 당연해서 도서관 내 시인성 있게 써놓지 않는 것들이다. 하지만 도서관을 많이 이용하지 않으면 기본으로 빌릴 수 있는 도서가 몇 권인지 모를 수 있다(5권이다). 검색 기기를 사용할 수 있으나 도서관 서가를 인식하는 일은 어려울 수 있다.

 

봉사활동을 다 하면 싸인을 한다. 생년월일을 쓰는데 대부분 앞자리가 0으로 시작했다. 00, 04, 09 사이에서 64년 생, 삐뚜른 글씨를 발견하고 반가웠다. 몇 시간의 경험에 다양한 만남이 있었고, 무엇보다 조용히 그러나 움직인다는 점이 좋았다. 그러나 이상하게도별일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일한 만큼 쉬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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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기'. 바로 이 책의 주제입니다. '있기'는 인간에게 근원적인 문제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있기'를 지극히 당연한 일로 여기지만 때로는 그 '있기'가 불가능해집니다. '있기'가 불가능해진 사람들의 회복을 돕기 위해 저는 돌봄시설에서 함께 밥을 먹고, 운동을 하고, 게임을 하고, 산수 퍼즐을 풀고, 노래하고, 그냥 앉아 있었습니다. 불가사의한 일입니다. '있기'는 누군가가 곁에 앉아 있음으로써 가능해집니다. <있기 힘든 사람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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