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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보다 고속도로나 비상구가 더 가까운 자리

빨간 라인 중 하나에 앉았다.. 2층의 끝이고 의자에 기댄 것이 아니라 블퀘 벽에 기댄 느낌. 구석 중의 구석 그런데 S석임

 전동석/카이 페어가 코로나로 취소되면서 겨우겨우 다시 예매했다. 블퀘의 끝중에 제일 끝자리. 블루스퀘어에 억지로 낑겨들어간 느낌. 단차가 있어 무대는 확보할 수 있지만 배우들의 얼굴은 절대 확보할 수 없다. 다락방 느낌의 좌석으로 천정이 이렇게 가까울 수 없는데, 아늑한 것 같으면서도(착각이다) 좁아터짐. 대신 비상구는 가깝다. 아마 블퀘 옆 도로가 더 가까울 것같았다. 이 자리가 S석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오글 챙겨오지 않은 죄 

 오글을 빼놓았으나 가방에 챙기지 않고 그대로 집에서 출발. 오글 없이 도착했다. 하지만 아직 괜찮아! 빌리면 되니까! 하지만 6시 15분에 이미 오글 매진. 공연 시작은 7시 30분. 심지어 오글 빌려주는 시작 시간은 5분 남았었다. 잠시 공연때 블퀘 밖에서 오글을 30개씩 떼다 파는 상상을 했다. 다 팔수 있지 않을까.  

 

그래! 나에겐 귀가 있으니까!

쌩눈으로 2층 10열에서 뭘 볼 수 있나... 네... 뭐 잘 안보입니다. 귀는 공평하니까 들을 수는 있겠지... 정말 들을 수만 있었다. 스피커가 거의 옆이었는데, 스피커에서는 각종 음향 소리가 잘 들린다.

특히 북극 바람 소리... 그래서 괜히 추운 느낌이었음.

 

빅터/자크 민우혁 배우님/ 너무나도 인간적인

용안을 못본 것이 한탄스럽지만 멀리서도 잘 보이는 거대한 몸과 연기, 게다가 블퀘 끝, 이 다락방까지 잘 전해오는 목소리에 감동했다. 첫 번째 갈등: 연구를 끝까지 해야한다는 호기심이나 책임보다는 친구의 죽음이 두려운 인간. 두 번재 갈등: 주변인들의 죽음이 두려운 인간. 그래서 괴물을 만나면 죽여야 한다는 생각 뿐이라는 것이 잘 전해졌다.

 

원작 소설을 매우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아쉬운 것은 빅터를 후회하는 인물로는 그리지만 반성이나 사과하는 인물로 그리지 않은 것이다. 한번도 잘못했다거나 미안하다는 말을 괴물이나, 자신 때문에 희생된 주변인들에게 하지 않는다. 마지막까지 운명과 싸우려 했던 자신의 이름만 크게 부를 뿐이다. 나는 프랑케엔슈타이인~

 

 

앙리/괴물 박은태 배우님/ 신이 된 괴물

멀리서 보니 괴물의 거적떼기가 약간 신의 그것처럼 보이고 목에 흉터도 안보이니 실루엣은 마치 그저 신... 게다가 빅터에게 벌을 내리는 괴물의 목소리가 너무나 숭고해 괴물이 아니라 신 같았다. 괴로움을 삭이는 괴물. 원작 소설에서 괴물은 누구보다 더 애정을 갈구하고 사람이 되고 싶어하는 이로 나온다. 모습만 괴물이지 사람의 정신과 마음을 굉장히 닮는다. 말하자면 그것이 아직 어린, 덜성숙한 상태인데 박은태의 괴물은 거의 처음부터 원숙한 정신상태를 갖고 있다.

 

앙리였을 때도(인간)죽어야 하는 괴로움, 빅터에 대한 작은 원망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이미 운명이나 체념으로 완벽히 받아들인 모습 때문에 갈등이 좀 덜하고, 빅터와 거리가 조금 먼 것 같다는 생각. 목소리, 성량, 모두 완벽했지만 약간 발음이 부정확하다는 인상이었다. 

 

원작 소설과 얼마나 차이가 날까?

원작의 모티브와 몇 가지 장치만 가져온 극인데, 뮤지컬로 가져올 때 현대인들을 짧은 시간안에 이해할 수 있도록 비극적이고 개연성 있도록 구성을 잘 해놓았다. 가장 큰 차이는, 여성 캐릭터의 부재, 시대의 정신상을 좀더 미성숙하게 이해하는 데 있다. 원작은 외부의 큰 사건이나 요인이 없다. 배움과 호기심의 열망이 큰 빅터, 그리고 인간이 되고 싶은 괴물과의 갈등이 주를 이룬다. 뮤지컬은 전쟁이라는 세계관과 함께 앙리를 새롭게 그려냈고, 빅터에게 불행한 어린시절로 인한 트라우마, 상처를 잔뜩 줬다. 

 

빅터의 어린시절은 정말 불우했나

원작 소설: 부유하고 사랑이 넘치는 집

빅터는 부유하고 누구보다 빅터를 사랑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다. 모든 것에 대한 전폭적인 지지와 애정, 그리고 모자람 없는 가정환경에서 빅터는 과학을 스펀지처럼 흡수하고자 하는 똑똑한 인물로 자라게 된다. 이 가족에게 하나 결핍 된 것이 있다면 바로 딸이었다. 딸을 매우 갖고 싶어 했으나 찾아오지 않는다. 그러다가 봉사활동을 하면서 만난 어떤 아이를 양자로 삼게 된다. 그녀는 프랑켄슈타인네 집의 양녀이자 빅터의 어린시절 친한 친구이자, 그리고 후에 결혼을 약속하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막내 동생(남자)가 태어난다. 빅터와 터울이 많이 난다.

그리고 이 둘이 훗날 괴물의 희생양이 된다. 

 

소설과 다른 점: 뮤지컬에서는 이 친한 친구이자 훗날 결혼할 여자가 엘렌으로 나오며, 다른 역시 부유한 집의 딸로 나온다. 극을 헷갈리지 않기 위해 잘한 선택 같다.

 

어머니의 죽음과 빅터의 연구?

원작 소설: 관계 없다. 어머니의 죽음_딸을 구했던 용감한 어머니, 슬프지만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

어머니는 딸의 병을 간호하다가 병에 옮아 죽게 된다. 성홍렬로 나오는데, 그 시대에 병을 간호하다가 옮을 수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지만 딸을 구하기 위해 어머니는 온종일 간호한다. 결국 딸은 회복하고 어머니는 회복하지 못한다. 온가족이 슬퍼하지만 어머니는 딸을 살릴 수 있어서 기쁘고 다행이라고 말하며, 건강하고 어른스러운 태도로 죽음을 받아들인다. 혹여 딸을 탓하게 될까봐 누구도 탓하지 말라고 말하며, 떠나기 전까지 가족들의 슬픔을 돌본다. 이 일은 빅터 가족에게 매우 슬픈 일이었지만 이러한 어머니의 태도로 의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게 되며, 빅터 인생에 큰 트라우마가 되지는 않는다.

 

뮤지컬: 부유한 집안인 것은 같으나, 아버지의 사랑을 거의 받지 못하고 어렸을 때부터 괴짜로 큰다. 어머니의 죽음앞에 의사인 아버지조차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종교적인 의식(?)으로 죽음에 맞서다가 어머니를 잃게 되어(이 부분은 소설 <다빈치 코드>가 생각난다) 빅터는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아버지를 싫어하게 된다. 어머니를 되살리려는 마음을 품고, 그렇게 하고자 해 마을 사람으로부터 마녀, 혹은 괴물이라는 뒷말을 듣게 된다. 그에게는 전폭적인 지지를 주는 누나가 있다.

 

소설과 다른 점: 어머니가 병으로 죽는 것은 동일하지만 어머니의 주체성이 드러나지 않는다. 빅터를 상황에 희생되는 인물로 그려낸다. 어머니의 캐릭터성을 없애고, 빅터의 비극을 극대화 하는 인물로 사용했다.

 

빅터가 괴물을 만든 이유

원작 소설: 순전히 과학적인 호기심이었다. 빅터는 대학에 가면서 여러 선생과 친구를 만나고, 지식을 배운다. 그리고 자기가 지금까지 고향에서 알았던 배움(연금술 등)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그 당시 최전선의 과학을 배우게 된다. 이 둘이 합쳐져 생명을 탄생시키는 아이디어를 얻는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정신이 지친다. 가족들은 대학에 간 후 연락이 안되는 빅터가 걱정되어 고향 친구 앙리에게 요청해 그를 챙기도록 돕는다. 앙리는 빅터와 여러모로 정 반대에 있는 인물로, 과학에 관심이 있거나 그의 연구를 돕지는 않는다.

 

뮤지컬: 전쟁에 쓸 인간 병기를 만들기 위해

목적이 더 분명하고 빅터가 어떤 인간인지 알게 해주는 부분. 직업적인 성취와 과학에 열광하는 부분이 좀 더 명확하게 그려진다. 여기서 앙리를 만나게 되고, 앙리는 의학의 한계를 극복하고 인간을 더 돕기 위해 빅터의 꿈에 합류한다. 이 점은 소설보다 더욱 설득력 있었다. 앙리와의 관계성에서도 좋은 고리였다.

 

괴물의 탄생

원작 소설: 괴물이 탄생하자 빅터는 두렵고 끔찍해한다. 괴물이 반사적으로 알았으며, 도망가게 된다. 빅터는 괴물에 대한 책임감이 전혀 없다. 찾을 생각이나 어떻게 키울(?)생각은 하지 않고 다시 자신의 삶을 산다. 그리고 생명을 만드는 일을 중단한다. 이것은 원작 소설에서 메리 셀리가 빅터의 모티브로 삼은 자신의 남편의 삶과 비슷하다. (메리 셀리의 남편은 전 부인의 자식들을 버리고 메리 셀리와 재혼함)

 

뮤지컬: 괴물의 탄생부터 다르다. 생명을 살리는 연구를 하다가 우발적으로 빅터는 살인을 저지르게 되고, 그 죄를 뒤집어 쓰고 앙리가 대신 죽는다. 앙리를 살리기 위해 빅터는 생명을 창조하나, 괴물이 태어난다. 괴물은 나오자마자 아마도 우발적으로 집사를 죽인다. 빅터는 괴물을 죽이려 하고, 괴물은 도망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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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은 이야기는 2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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