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당신-유하

_봄밤 2014. 2. 15. 21:33



당신


유하




오늘밤 나는 비 맞는 여치처럼 고통스럽다

라고 쓰다가, 너무 엄살 같아서 지운다


하지만 고통이여, 무심한 대지에게 칭얼대는 억새풀

마침내 푸른빛을 얻어내듯, 내 엄살이 없었다면

넌 아마 날 알아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열매의 엄살인 꽃봉오리와

내 삶의 엄살인 당신,


난 오늘밤, 우주의 거대한 엄살인 별빛을 보며

피마자는 왜 저 몸을 쥐어짜 기름이 되는지

호박잎은 왜 넓은 가슴인지를 생각한다


입술을 달싹여 무언가 말하려다,

이내 그만두는 밑둥만 남은 팽나무 하나


얼마나 많은 엄살의 강을 건넌 것일까





유하, 『세상의 모든 저녁』, 민음사.







대보름을 알려주었다. 달이 너무 밝아서 하마터면 달을 보지 못할 뻔 했다.


잘 지내라는 말은 언제나 명령했다. 그것은 부탁을 모르므로. 잘 지내. 하고 돌아서는 것이 맞다. 황태국을 끓는 동안 무말랭이를 무쳤다. 바글바글 끓어오르는 흰기름이 뿌옇다. 조근조근 무말랭이는 입 속에 오래 남았다. 맵고 짠 것에 눈가 축축히 몰릴 무렵, 이곳에서 볼 수 있는 가장 큰 달이라고 알려주었다. 그것이 인사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우리는 부탁을 오래 모른다. 유하의 시를 읽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