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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날들의 밥상-최치언

_봄밤 2014. 2. 13. 15:50



가난한 날들의 밥상


최치언


 당신 미쳤어요 남이 쓰다 버린 밥상은 왜 가지고 들어

와요

 여자는 신문지 위에다 밥을 차리며 쫑알거렸다

 언제까지고 신문지 위에다 밥을 놓고 먹을 순 없잖아

 밥상은 정말 낡고 색이 바래 있었다 그런 것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한쪽 다리가 심하게 부러져 있

었다

 제대로 서지도 못하는 밥상으로 도대체 뭘 하려고요

 여자는 밥주걱을 대신하여 수저로 밥을 퍼담고 있었다

 내가 한 손으로 이렇게 받치고 있지 그럼 되잖아

 당신 정말 미쳤군요,

 그들은 그렇게 밥을 먹기로 했다

 여자가 먼저 밥을 먹고 그동안 남자는 밥상을 떠받치고

있다

 이번엔 여자가 밥상을 떠받치고 남자가 밥을 먹고 있다

 정말 왜 이렇게 살아야 하죠

 여자가 떠받치던 밥상의 다리를 흔들자 남자의 국그릇이 

 대신 울어준다

 그런데 사실 이건 우리들의 가난과 하등 관계가 없는

거라고

 남자가 쏟아진 국물을 나뭇잎으로 쓱 훔치며 말한다

 힘들어요 어서 먹기나 해요

 왜 밥상의 다리를 네 개로 만들었느냐 그것부터 의심을

해야 해

 그럼 세 개 정도로 하면 되겠네요, 세 개도 많아

 두 개나 한 개 정도로 만들 수도 있지 않겠어

 아예 다리가 없는 밥상이면

 더 괜찮겠고, 그렇담 바닥에서 먹는 밥과 무엇이 다르죠

 여자가 자세를 고쳐 앉자 또다시 남자의 국그릇이 쏟아

진다

 남자는 국물을 훔치며 생각해 보았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땅바닥에서 밥을 먹나

 여자도 그건 그렇다고 끄덕였다

 여자의 눈에 별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최치언, 『설탕은 모든 것을 치료할 수 있다』, 랜덤하우스중앙, 2005.






시인의 말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그냥 슬프고 허전하고 멀리 가는 버스도 타보고


시장에도 가보았습니다.


그곳엔 생을 뜨겁게 달구는 불이 있었고


그 불로 잘 차린 식탁이 있었습니다.


저 혼자 그 식탁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혼자인 꽃이 화병에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오늘은 제 생일입니다. 



2005 가을

최치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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