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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지도의 비밀이 풀렸다. 그것은 고양이.
한때 세기의 비밀인듯 각국이 치열하게 업데이트했던 지도는, 이제 격자로 짜여진 지도안에 실제로 산다는 것을 잊고 싶은 인간들에게 유머를 주는 납작한 그림이 되어버렸다. 이미 모두에게 알려진 정보는 심심풀이 땅콩처럼 쉽게 그림판으로 불려진다. 웹에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오히려 이세상에 없는 것처럼 여겨지는 지금에 <지리의 힘>을 말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일 수 있다. 그러나 '지리'라는 고루한 개념은 산이나 바다, 국경을 말하는 것 이상이다. 더 작게 분화되어 이제 개인의 생활반경을 탐색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는데, 이쯤되면 '지리'가 아니라 '보안', '개인정보'등의 말이 더 잘 어울린다. (그리고 이쯤 말해야 지리가 당신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으로서 지리를 진지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같다) '지리를 안다는 개념'이 국가의 일에서, 일상을 사는 개인의 일로 분화하고 세밀해 졌지만. 산맥과 강, 바다와 국경을 알리는 지리는 여전히 경제고, 정보이고, 보안이며, 이것을 이해하지 않고는 역사와 경제, 미래를 가늠하기 어렵다. 고루해 보이지만, 어느정도는 사실이다.
국가, 종교, 이념, 인종을 모두 벗어나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있는 세상인듯 싶지만, 생활은 그렇지가 않아서 한몸이 누울 곳도 결국 부동산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기억해 보자. 한 사람이 사는 입지에도 너무나 많은 요소들이 개입하며, 그것을 개인이 통제하기란 매우 어렵다는 사실도. 그것을 초월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인데, 바로 상상 이상의 돈이다. 군소의 문제들은 어느정도 해결될 수 있다는 결론이다. 그러나 상상 이상의 돈이란, 상상 속에서만 주어지므로 주어진 환경을 어느 정도 이상 개척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알려줄 뿐이다. 운명론 같아서 말하기 두렵지만, 그곳에 산이 있다는 것은 현상이자 결론인 셈. 암울하지만 '이라크와 시리아 간의 분쟁이 지리적 법칙을 무시한 유럽 식민 세력의 무지에 뿌리를 두고 있고, 중국의 티베트 점령은 지리의 법칙에 순응한 것이다.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미국의 대외정책조차 이 지리적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저자의 명쾌한 설명은, 그래서 지리로서 촉발된 현재를 이해하고 그 다음을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안내한다.
25년 이상 국제 전문 기자로 활약한 저자는 중국 미국 서유럽 러시아 한국 일본부터 북극까지 전세계를 10개의 지역으로 나눠 지리에서 비롯된 경제, 분열, 빈부격차등을 이야기 한다. 노련하게도 북한을 설명하는 부분에서는 환웅과 웅녀 만남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단군이 이 나라를 세웠다는 단군 신화를 제법 설명하면서, 현재 김정일 정권의 미스테리에 접근한다. 어떻게 한 가족이 신격화 되는 것이 가능한가를 설명하는 것이다. 한 나라의 신화야 말로 그 지역의 지리적 환경과 떼어놓을 수 없으며, 아주 오랫동안 이어진 사고가 현재 어떤 정체성으로 이어져 왔는지를 살핀다. 일본이 스스로에게 닛폰, 즉 <태양의 근원>이라는 명칭을 말하게 된 것은 그들이 이상한 망상에 쏠렸기 때문이 아니다. 일본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수평선과 자신들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것. 매일 아침 수평선에서 떠오르는 것은 태양이었으니, 자신들을 그렇게 생각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설명이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설득력 있게 전세계를 살핀다.
그는 엉망이된 체스 판을 오가며 폰과 룩, 비숍과 나이트가 마침내 이곳에 도착한 이유를 흥미롭게 이야기 하지만 현실은 체스판이 아니기에 그의 단정적이고 때로는 유머를 섞어 말하는 시도가 불손하게 느껴진다. 특히 티베트를 이야기 하는 대목에서는 마음이 크게 상했고, 지리를 들어 설명하는 것은 다른 가능성을 생각해 볼 수 없다는, 한계를 본 것도 같았다.
"설사 티베트에서 한족에 대항하는 봉기가 일어난다고 해도 인구학과 지정학이 티베트 독립에 손을 들어주지 않는다."
그의 설명은 깔끔하게 에디팅된 한 줄일 따름이지만 이 한줄에 자신의 전 생애와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아들 딸들의 고통이 엮여 풀 수 없는 고통의 나날에 있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이 둘의 유리가 속상했고, 지리를 극복할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이렇게 체크하거나, 더 이상의 기대를 걸지 않는 25년 연륜의 보수적인 국제 전문 기자에게 저 고양이 지도를 보내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한반도라는 문제를 어떻게 풀어야 할까? 풀 수 없다. 그냥 관리만 할 일이다. 무엇보다 전 세계는 이 문제 말고도 관심이 필요한 시급한 일들이 널려 있다. "
풀 수 없다는 말이 이성적으로 맞을지 몰라도, 심정적으로는 틀렸다고 하고 반박하고 싶은 말들이 여기 있다. 인간의 역사는 어쨌든 인간이 써왔던 것이니까. 그런 인간이란 어쨌든 다분히 마음으로 이뤄졌고, 그것으로 예견할 수 없는 역사를 그려왔다는 점을 다시 기억하고 싶어졌다. 잘 될것이라는 근거없는 믿음을 추앙하는 인간은 아니지만, 언젠가 본 풍경을 마음 대신 놓는 것으로 <지리의 힘>이상 무엇이 있다고 믿는 낙관론자가 되어야겠다.
햇빛이 쨍한 오월이었다. 어떤 아이가 아주 작은 손바닥으로 차양을 만들어 겨우 제 이마만을 가리는 손그림자를 그리며 총총 뛰어갔다. 이런 아이들이 험한 산가지, 지진과 테러의 현장, 물이 부족하고 태양이 작열하는 곳에 산다. 이런 것을 다 지우고 어떤 이름의 국가가 그 자체로 하나의 안격으로 부여되어 살아 움직이는 사건에, 지리의 맹점이 있다고 믿는다. 국가, 종교, 이념, 인종을 모두 벗어나 그것을 거치지 않고 이 세계에 '개인'으로서 존재할 수있는 세상이 있을 때, 어쩔 수 없다고 여기며 인간을 무력하게 했던 지리의 힘이 최소한으로 사그라 들 수 있지 않을까. 세계지도의 비밀을 고양이에서 찾는 이상한 인간들은, <지리의 힘>을 읽고 그것을 이해하고 대응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사건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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