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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자리에는 말라버린 꽃과 초강력 딱풀과 한쪽이 끊어져 고무줄 튀어나온 머리끈, happy? 라고 묻는 정사각형 카드, 그리고 남해 바다가 보이는 엽서가 한 장 있다.
가장 이상한 것은 happy? 라고 묻는 정사각형 카드다. 흰색 마분지, 깔끔하고 가느다란 서체의 안쪽을 열면 '우리는 단지 당신이 행복하길 바라...' 라며 고객센터를 적어놓았다. 마우스 패키징 중에 하나였다. 피식 웃으며 빼놓았던 기억이다. 마음이 뭍어버리면 버릴 수가 없다. 물건의 사용 설명서가 점점 필요 없어지는 요즘 예전의 두껍던 설명서는 몇장의 카드로 남아 그마져도 버리기 쉽게 되어 있다. 점점 더 정교해지는 물건에 점점 더 간소화 되는 설명서는 무슨 뜻일까. 사용도가 높은 물건일수록 그런 것 같다. 그것을 가장 빨리, 잘 익히는 방법은 많이 시간을 보내는 거다. 모르는 것을 알려주는 가장 좋은 형태는 인쇄된 활자가 아니며...그럼에도 여전히 전할 수 없는 것을 전하는 가장 촌스러운 매체는 종이에 활자라는 건 재밌는 일이다.
이렇게 작은 카드가 끝까지 남을 수 있는 방법은 뭐였을까? 마우스를 팔면서 끝까지 남는건 뭘까? 마음에 남는 방법을 강구하기 위해 머리를 짜냈었을 사람들을 생각하면 역시 귀엽다. 당신들의 메시지는 살아남아 내 모니터 위에 있답니다. 그리고 난 당신들의 마우스를 세 개나 샀지요. 이게 바로 성공이 아닐까요? 당신들의 메시지가 이렇게 살아남았고, 매출로도 이어졌으니까요. 게다가 이 마우스를 쓴 이후로 난 팔목 통증도 줄었답니다. 당신네 기업은 성공했어요! 오, 그런 표정 짓지 말아요. 이게 성공이 아니면 다 뭔가요.
마침내 이사를 했고, 가족여행을 다녀왔다. 이로써 3월이 무리 없이 지나게 될 것이다. 요새 공간을 재고 원하는 배치와 물건을 이루기 위해 많은 시간을 쓴다. 최근엔 식탁을 샀다. 식탁은 공간을 바꿨고, 기분을 바꿨고, 생활을 여러모로 바꾸고 있다. 우리를 모이게 하더니 이야기를 하게 했다. 함께 앉아도 거리를 지킬 수 있다. 식탁에는 여러 개의 자세가, 여러개의 괴임이, 머리를 수그려 먹는 저녁이 벌써 수십개가 겹쳐 있다. 앞으로 한 달은 더 이런 구매가 이어질 것 같다. 내가 있는 공간에 깊이 개입할 수 있다는 만족감. 내가 나를 어찌할 수 있다는 기분. 조금 더 잘 있으려고. 그건 잘 사는 것과 비슷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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