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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예식장>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요. 이름이 '행복'이라는 허름한 예식장을 본 일이 있습니다. 그대로 완전한 이름의 덧칠을 보고 의아했어요. 예식장은 어떤 이름 없이 그대로 행복한 곳이어야잖아요. 혹시 행복하지 않을까봐 맨 앞에 행복을 붙여놓았던 거라면 나는 그것을 비웃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은 연민입니다. 얼마나 오래전에 예식이 끝났는지 모르는 거미줄이 쳐진 간판, 크게 들이 킨 숨이 들렸거든요. 이 앞에 설 이들이 문 밖으로 줄이 길어요. 그리고 '이후'라는 문을 지으며 고민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문을 짓는 이들은 이 앞을 지날 이들이 가질 불안을 잠시 쥐고 말합니다. '혹시'에 대적할만한 한 마디를 올리자. 그때 고른 단어가 '행복'이라는 말, 그렇게 해서라도 간절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이해하기로 했습니다. 허름한 간판을 뭐라고 하지 않기로 해요. 나는 그 이야기에서 발길을 돌리기로 했습니다.
레몬청 이야기를 쓰고 있었어요. 레몬청은 굵은소금으로 레몬 껍질을 잘 씻어내고 얇게 썰어 설탕과 함께 소독된 유리병 안에 쌓는 것이지요. 가득 담고 마개를 닫으면 이들은 그 안에서 천천히 녹습니다. 누가 누군가에게 녹는지도 모르고 하나가 되는 것인데요 그래도 종내는 레몬이 남으니까 레몬청이라는 이름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나 설탕으로 인해 만들어진 효소가 레몬을 달착하고 싱그럽게 하지요. 둘은 원래의 전과 완전히 다른 무엇이 됩니다. 그러니 그것의 이름에는 레몬이라거나, 설탕이라는 말이 올라 올 수 없는 것입니다.
글 속의 여자는 처음 만들어서 그런지, 칠칠치 못한 실수인지 레몬청을 만든 후 마개를 꼭 닫아 놓지 않았습니다. 틈새가 있었는데요 이러면 발효가 일어나지 않고 이둘은 썩게 돼요. 시간이 레몬청으로 만들어 놓을 줄 알고 안심하며 기다리던 여자가 어느 날 이 뚜껑을 열게 되었을 때, 마개 가장자리에 곰팡이를 걷어내고 맛이 간 레몬청을 보게 되지요. 여자는 레몬청이 되다만, 그것으로 부를 수 없는 레몬청을 결국 버리게 됩니다. 그 레몬청을 본 그녀의 마음은 적지 않을게요.
사람이 사람을 만나 함께 나는 날들은 레몬과 설탕처럼 이해가 불가한 서로가 만나 한정된 세계에 머무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캘리포니아의 바람과 동남아시아의 태양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아마 영원히 알 수 없겠지요. 그런 둘이 진득한 시간에 녹아가며 서로의 달콤에 취해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지경을 삽니다. 어느 날은 눈을 떴을 때 입안에 단내가 나듯 지겨워지기도 할 테고요. 레몬과 설탕의 일을 서로는 감지할 수 없어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은 이 변화를 다 볼 수 있습니다. 내일의 눈으로 비추면 투명하게 드러나는 어제의 궤적이 그러하듯, 유리병 안에 담긴 이들은 감정을 숨길 수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우리는 어떤 연인을 볼 때 부러워하면서도 쉽사리 뛰어들지는 못하는 것 같습니다. 유리병, 좀 부끄럽잖아요. 들어간다면 당신, 견딜 수 있겠어요?
여기 뚜껑이 열린지도 모르고 닫을 방법도 없는 레몬과 설탕은 그 안에서 썩어 갑니다. 썩기 전, 한정된 시간 한정된 공간, 한정된 달콤함이 있습니다. 레몬과 설탕, 그 둘이 상하기 전 까지만이 그들의 행복입니다. 바깥의 공기가 들어와 다른 작용이 일어나면 레몬과 설탕은 스스로도 지키지 못하고 서로를 안아 다른 것이 될 수도 없어요. 어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한 말이죠. 예컨대 여자가 덜 닫힌 뚜껑을 발견해서 잘 닫아두거나, 어떤 다른 힘으로 바깥이 안을 손상하지 않도록할 수 있다면 말이죠. 그러나
나는 기적을 바라지 않습니다
글 속의 여자는 내일이 즐거워서 일찍 자요. 그것을 만들었다는 기쁨과 그것을 전해줄 사람을 만나기 위해 최대한 레몬청이 될 시간을 고독으로 둡니다. 중간에 열어서 맛을 보거나 설탕을 더 넣거나, 손 타지 않게요 자주 잊습니다. 내일 모래 입을 옷을 벌써 떠올리고, 쌓여있는 열한 권의 책 위로 세 권을 더 얹습니다. 걸레를 깨끗이 빨아 널어요. 아주 근소한 차이라도 닫히지 못한 레몬청은 결국 썩어갈 것이고 맛에 범주를 벗어나겠지요. 마침내는 아무에게도 먹히지 못하게 될지도 몰라요. 그리고 그것을 만든 여자로부터 버려집니다. 그러나 그게 어때서요? 뚜껑을 다시 닫지 못한다고 해서 곰팡를 이겨내지 못한다고 해서 레몬과 설탕이 만나지 않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 사실만은 아무도 어쩌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 시간이 너무나도 짧은 것 뿐입니다. 유구한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어요. 그들은 그들의 최대한의 시간을 살 뿐입니다.
혹시 완벽하게 밀봉 가능하진 않을까요. 그렇다면 얼마나 오래 그 세계가 보존될 수 있을까요. 궁금한가요. 그런것이 가능한 세계가 있나요. 물음이 가득합니다. 그런 곳을 찾고 싶나요. 물이 흘러 넘쳐 발을 적시고 그 물에 대해 무엇을 느낄 수 있는 한, 그런 곳은 없습니다. 모두 내 놓고도 지킬 수 있는 단 하나의 진실은 나와 당신의 간절이 이미 완성되었다는 것 뿐이지요.
가을이 불면 레몬청을 만드려고해요. 뚜껑을 꼭 닫아 달큼하게 발효 되면 당신이 있는 곳에 보내려고요. 눈이 내리면 물을 끓이고 한 두 장 띄워요. 상큼한 향이 입을 맴돌고, 어떤 유리병 속에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생각해요. 설탕이 물결처럼 레몬 사이사이 쌓이고 그 위로 눈처럼 싸락입니다. 스스로 녹는 풍경을 오래 보고 싶어요. 마침내 바랐던 맛을 내지 못한다고 해도 좋아요. 그게, 무슨 상관이겠어요?
예전에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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