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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구분을 해본다. 김영하과와 김연수과가 있다고. 준비된 두 개의 '세계관'이 등장하고 나는 별 고민도 없이 김영하 쪽에 선다. 음산하고, 희망이라는 게 별로 없고, 문장이 아릅답기를 바라지도 않는 쪽. 구분이 용이하지 않다면 좀더 직접적인 예를 들어볼까. "살아가는게 나를 죄인으로 만드네"라는 구절도 가져오자. 이걸 보여주면 김영하는 으음. 그렇군요 라고 입을 뗄 것 같지만 김연수는 왜? 냐고 물어볼 것 같다. 그러니 나는 물어볼 것도 없이 김영하과다. 무슨 열대 과일 이름같군요.
나는 김연수의 환함과 그의 유려함과, 치밀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김연수의 소설이 읽을만하지 않아서는 전혀 아니다. 그는 소설을 아주 잘 쓴다. 한 줄을 여러 번 읽게 하고 한 권을 읽으려면 적어도 열 권의 독서가 필요하다. 그는 항상 공부하고, 그 공부가 매 소설에서 잘 드러난다. 그렇다고 지식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위화감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의 소설에는 유머가 있으며, 독자의 읽기가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다. 그의 소설은 대부분 읽기 어렵지만 아주 소수는 말랑말랑해서 즐겁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 소설도 녹록하다고는 할 수 없다. 대중을 위한 글쓰기를 견지하면서도 자신의 스타일을 잃지 않는다.
그의 소설을 좋아한다고 할 수 없는것은 내가 그 소설의 맥락과 그가 차마 하지 않은 말과, 안 그래도 어려운 소설을 제대로 이해하고 좋아하는지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나는 그러니까 고급독자이고 싶은 열망만은 제대로 있어서 그런 여부도 스스로 알지 못한 채 섵불리 그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가 될 순 없다. 기술적인 부분이군요. 후에 극복할 가능성은 남아있나요? 물논... 이라고 해두어도 큰 산이 하나 남아 있다. 이건 정말 어쩔 수 없는 건데, 최종적으로 그와 나의 세계관이 달라서 그와 나는 다른 눈으로 세계를 바라보고 있고 그 사이를 도저히 좁힐 수가 없다.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할 수 없다" 라는 말을 하기 전에 "저는 김연수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라고 말해버리는 거다. 좋아할 수 없다는 말은 아프니까 하지 못하고 그 소설을 제가 이해했는지 어쨌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좋아한다고 할 수 없습니다...라고 둘러대는 것이다. "좋아하지 않는다"는 말로 도망을 나온 셈이라니!
하지만 이와는 또 별개로, (궁색하게도)김연수의 저런 말들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사람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궁리한다.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하지 않아. 그러나 그 사람이 하는 저런 말은 미칠듯이 좋다. 아. 그래서 수많은 여성팬들이 그의 눈빛을 좋아하는거겠지. 뭘 보고 있는 걸까, 어떤 말로 쓰게 될까. 그 반듯한 싸인을 이제는 거의 따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똑같은 이름을 새로운 책에 받으려고 줄을 서는 거겠지. 실비아 플라스의 "드로잉집"까지 나오는 이유를 그녀의 독자가 아니기 때문에 알 수 없지만, 김연수의 저 말에 따라 그녀의 드로잉집을 보다가 손톱 바로 밑의 피부를 베이는 경험을 해보고...싶어지잖아? 위험하다, 위험해. 소설가란 위험한 족속이느니.
이쯤에서 끝나면 깔끔하겠지만 실비아 플라스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영화 <비긴 어게인>에서 그녀를 떠올리는 대사가 나온다. 상황은 스티브네 집에 온 그레타. 그레타는 반쯤 정신이 없다. 스티브는 그레타를 끌고 자신이 노래하는 바에 데려가려고 한다. 아무데도 가고싶지 않아하는 그레타를 보고 이렇게 말한다. "널 두고가면 가스 오븐 속에서 네 머리를 발견하게 될 것 같아" 실비아 플라스가 그렇게 자살했다. 남편 테드 휴즈가 외도한 사실을 알게 되었고, 그녀의 자신의 우울증도 있었다. 치밀하게 준비해서 생을 마감했다. 그녀 자신도 글에 재능이 있었지만 남편 테드 휴즈의 그늘에 가리기 쉬웠고 육아에 지쳤다. 그레타가 처한 상황과 여러모로 비슷하달지. 그녀 스스로도 재능이 뛰어났지만 남자친구 데이브를 보조하며 가려진다. 게다가 바람까지 피우니. 그레타는 데이브와 헤어지고 친구 스티브네로 피신 온 것이다. 그리고 스티브는 그녀를 데리고 바에 가서 노래를 한 곡 부르는데, 그곳에서 댄을 만나게 되는 거다. 운명이란, 바람에 이리저리 쓸려가는...그러고 보자면 아무것도 아닌 것. 후에 그레타는 자신의 앨범을 성공하고, 데이브에게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 된다. 후에 일은 두 사람만이 알겠지만 비긴 어게인이라니.
실비아 프라스의 불행한 삶 이후에도 그녀와 같은 처지에 놓이는 예술가들이 있어서 비긴 어게인이라는 꽤나 사랑스러운 영화에도 그녀의 그림자가 비친다. 그러나 실비아 플라스, 당신은 모르겠지. 당신이 틈틈히 그렸던 드로잉까지 이국의 땅에서 출간되었다는 것을. 어떤 것으로도 그 생에 위로는 될 수 없겠지만 적어도 그녀의 재능을 후대가 알았다. 라는 말만은 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어쩌다가 이야기가 이렇게 되었나? 나가는 말은 이뿐이다. "김연수를 좋아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좀 알려주십시오." 부탁이다. 내가 바뀌거나 그가 바뀌거나, 그게 아니라면 나는 그의 소설을 좋아할 수 없다. 좋아할 수 없는 것을 좋아하는 고통을 겪고 싶지 않다. 이게 뭔소린가. 마음 놓고 김연수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부럽다는 얘기다. 내가 살아냄으로써 세상이 조금씩 좋아질 수 있다고 믿는 세계에 속한 사람들. 그의 소설 깊은 속내를 다 알고 있는 앎의 소유자들. 소설의 어떤 것을 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도 그와 피가 맞아 사랑에 빠지는 천진한 마음들. 모두 내가 갖지 못한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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