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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 소녀
-루시에게
여태천
오늘 밤은 그냥 자려고 해.
불을 끄고, 아무 생각도 없이
겨울밤들을 우수수 건너가는 저 눈을 보며
그 눈을 보고 휘둥그레진 초원의 커다란 눈을 떠올려.
큰곰, 작은곰, 페가수스, 긴 수염의 염소마저 사라지고
처음으로 해가 뜨지 않았던 그날.
은행나무가 보이지 않을 만큼 눈은 쌓이고
그 속에 잠시 가려운 몸을 눕혔는데
누가 그걸 기록으로 남겼을까.
독한 술을 희망으로 알았던 저 겨울밤들을
오늘 밤 가만가만 생각하면서
오래된 이 유리 안에서 그냥 자려고 해.
펄펄 내리는 저 빙하기의 눈은 아름답고
펄펄 눈이 내리는 이 도시의 내일을 보고 있으면
익숙한 노래가 생각나.
아, 전구 알처럼 따뜻해지는 몸.
투명하게 밝은 이곳에선 아무래도 잠이 오지 않아.
눈이 그쳐도 모든 건 그대로야.
치마는 여전히 짧고
불행은 불행을 닮고
이곳의 개들도 저 폭설을 밟고 지나가겠지.
여태천, 『스윙』, 민음사, 2008.
루시.
오늘 밤은 그냥 자려고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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