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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까지만 해도 많은 선택지가 있었다. 낙산사를 가거나 춘천에 가거나. 혹은 현대미술관에 가서 카페에서 놀거나. 하지만 아무곳도 가지 않았다.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겠지만 모두 가본 곳으로, 그 경험이 무엇인지 대충 짐작이 되었다. 물론 다를텐데 비슷할 것이라고 넘겨 짚는다. 아침에 암벽장 레슨 자리가 있는지 물어보았다(자리는 물론 없었다) 뭐를 해야할텐데. 뭐라도. 하면서 미적거린다.
오늘 내일 생일친 친구가 둘 있어서 선물을 보냈다. 그걸 고르고 결제를 실패하고 카드를 다시 등록하고 어쩌고 하느라 거의 한 시간을 썼다. 바야흐로 할일을 생각해 보았다. 모두 내가 할 수있는 일들만, 해야 하는 일들만 생각한다. 그러나 내가 이렇게 하루 이틀 사흘을 좀 낭비한다고 해서, 큰일이 날까? 그러면 안될까?
바깥은 추워도 분명히 여기보다는 밝을 것이다.
싫어도 산책을 좀 해야 할 것 같은데. 어느쪽으로 가야할까?
머리가 텅 비어있다. 아무도 없이 혼자 고양이와 있는 평일. 외로우면서도 좋은 감정. 누군가 놀러간 풍경을 새로고침하며 저긴 어딜까 생각한다. 고양이가 털을 고르는 사이 무게를 기댄다. 너는 꼭 그러더라. 무게를 느끼게 하더라. 그 쬐끄만 몸으로 내 다리나 팔을 쇼파삼아 기댄다. 웃기는 녀석이다.
며칠 전 꿈에서 회의가 있었다. 나는 심각했던 것 같다. 의자를 주섬주섬 끌어와 앉으니 나까지 셋이었다. 어디서 한명씩 들어오기 시작해서 나중에는 예닐곱명이 모이게 되었다. 동아리같은 모양으로. 그중 한명은 파란색의 땋은 머리가 어깨 위에서 찰랑였다. 얼굴이 새하얘서 그 머리가 잘 어울렸다. 무슨 얘기를 시작하고 끝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애는 존재만으로 유쾌했다. 꿈에서 깨니 심각했던 일이 그냥 그런 일인 것 같았다. 그리고 그 파란머리 친구를 어디서 보았나 했더니 회사의 한쪽 구석에 늘 단단하게 돌돌 잘 말려 있는 파란 노끈이었다.
오며가며 보았던 파란 노끈이 웃음을 주었던 것이다.
파란 노끈이 나를 걱정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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