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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세자매>는 고통스럽다. 고통 속에서 '동동거린다.' 세자매는 아침부터 밤까지 도대체가 바쁘지만 '인생이 이렇게 되어버려서' 제 손으로 수습하거나 조정할 수 있는 일이 매우 적다. 매일이, 사는게 아니라 버티는거다. 세상을 구하는 일이라면 어떻게라도 버텨볼텐데, 전쟁 속에서 살아나가야 정적과 싸워서 자신의 목숨을 빼내야 하는 거면 악바리라도 멋있을 텐데. 하다못해 회사 프로젝트를 멋지게는 커녕 '하는' 것도 아니고 한 달 안에 감옥을 나가야 하는 나름의 절체절명도 없다. 그냥, 중년이 다 된 여자들의 이야기이다. 각자의 남편과 아이가 있는 여자 셋.  

 

이들은 어렸을 때 한 집에서 자랐다. 가정폭력의 생존자들이지만 다 옛날 일이고 '그래도' 학교도 가고 졸업하고 결혼했다. 이 가족을 둘러싼 이야기를 하려면 '그래도'를 한 두 번은 더 써줘야 한다. 다시, '그래도' 가족이니까라는 명문으로 아직도 생일날 다 모여서 밥을 먹네 마네 하며 평생에 없었던 가족의 흉내를 내보려고 애쓴다. 세자매는 어릴 때의 폭력과 상처를 자신의 삶에서 어떻게든 해결해 보려고 또 애쓴다(지금도 진행중이다). 패대기도 치고 부셔도 보고 모셔도 보았으나, 이들은 중년이 되어서도 어딘가 고장난 삶을 산다.

 

영화는 막 들어온다. 관객이 다치든지 말든지 알게 뭐냐. 영화를 다 보고 얼얼해져서 리뷰를 살펴보았다. '연기는 좋았지만 불편했다'는 평이 자주 있었다. '불편하다'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무엇이 불편했을까? 해석해보자면, "이야기는 알겠는데 이 결혼하고 애 키우는 여자들의 삶이 뭐가 그렇게 스펙타클하다고 좀 조용조용하면서 영화가 하고 싶은 말을 할 수는 없는건가" 묻는 것이다.

 

나도 처음에 그렇게 생각했다. 이건 캐릭터의 한 쪽면 만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왜 이렇게 매순간 터질 것처럼 과장된 모습만 보여주지? 왜 이렇게 소리를 지르지? 저기서 이렇게 나온다고?... 현실감각이 없나? 그러나 세상의 이치가 자신들의 손에서 결정되고 끝장나고 인류의 숭고함을 말하고 훼손하면서 목청을 터뜨리는 것은 잠자코 듣고, 별 시덥지 않은 명분으로 우정과 배신 사이에서 줄을 타며 총칼을 겨누면서 인생의 진리를 캐는 양 하는 영화들의 말같지도 않는 욕지거리를 다 들어주면서, 비속어는 현저히 적으면서 남을 죽이거나 피도 나오지 않으면서 우리를 전혀 생각해보지 않았던 여자들의 과격하고 충격적이면서 파괴적인 삶으로 안내하는 영화에는 불편하다는 리뷰가 달리는 것이다. 위의 이런 영화들에는 불편하다거나 과잉되었다는 리뷰 대신 '숨막히는 000분이었습니다'라는 합쇼체(상대방을 아주 높이는 종결형)가 등장한다.

우선 막내 미옥(장윤주)은 폭주한다. 알콜중독자다. 종종 언니에게 전화를 걸어 뜬금없는 걸 묻고 언제라도 이 화면을 망쳐버릴 것 같다. 그녀의 생활은 엉망이다. 더럽고, 자신을 건사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글을 쓰지만 지우는 글이 더 많다. 가족이라고 여기는 것인지 모를, 고등학교에 다니는 남편과 남편의 아들이 있다. 세자매 중 어쩌면 가장 쉬운 방식으로 화면을 압도하는 것 같지만, 그렇다고 이 연기가 쉽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장윤주의 발견이다.

둘째 미연(문소리)은 중산층의 삶을 산다. 넓은 평수의 아파트, 햇살이 눈부시고 남편은 심지어 대학 교수, 그녀의 삶과 교회에서의 생활이 꼭 포개져 모두가 선망하는 삶인 것 같다. 아이들에게도 존댓말을 하지만, 식사 전에 기도를 하지 않으면 밥을 굶고 독방에서 죄를 뉘우쳐야 하는 규칙도 존댓말로 전한다. 나긋나긋하고 사람좋은 청산유수에 속으면 안된다. 말하기 전에 가끔 들이 마쉬는 숨이, 미연의 삶을 '좋은 것'처럼 보이도록 한템포 한템포 컨트롤 해왔음을 알수 있다. 그리고 그게 다 베갯 잎에 쌓여있다. 문소리는 이제 귀신이 된걸까.

첫째 희숙(김선영)의 삶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세상 우중충한 꽃집을 하고 있고, 허름한 아파트에서 살고 있는데 자신을 벌레처럼 여기는 딸과 산다. 그럴수 밖에. 자신을 귀하게 여기지 않으니 자신의 딸도 그리 여기는 것이다. 남편은 뭐하는 사람인지도 모르겠고 언제부터 왜 저렇게 사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그녀는 살기 위해 오직 '웃는 법'만 배운 사람처럼 웃는다. 그래서 인물에 긴장감이 없다. 마주하거나 대치하는 모든 사람에게 '우선권'을 내어주기 때문에 그는 누구에게도 존중받지 못한다. 아주 어릴 적, 자신의 삶에 '악다구니'를 빼앗긴 사람이 얼마나 볼품없이 살게 되는지 보여준다. 감초이거나 재미있는 역할로만 나와서 몰랐다. 김선영은 진실로 연기의 대가이다.

 

어렸을 적 한 집에서 자란 이 여자 셋은 각자 결혼을 해서 자신의 삶을, 아니 자신의 것이라고 해야할 지 망설여지는 삶을 살고 있다.

 

-본격적인 리뷰는 2부에서 시작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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