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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스활명수

_봄밤 2016. 7. 8. 16:42

중학생 무렵이었다. 저녁에 속이 좋지 않아 까스활명수를 한 병 먹었다. 티비를 보며 괜찮아지기를 기다렸다. 그런데 별안간 속이 뒤집히고 미식거리는게 아닌가. 욕실로 뛰쳐나갔다. 거실에 계시던 아버지가 뒤따라 들어왔던가. 원래 욕실에서 손을 씻고 계시거나 했을 것이다. 나는 수챗구멍을 향해 헛구역질을 올라오는 침을 뱉었다. 토하려는 자세였다. 그러자 동시에 아버지는 외마디 말을 놓고 나가려고 했다! 나는 황급히 손목께의 옷을 잡았다. 굉장한 악력이었으므로 아버지는 나갈 수 없었다. 헛구역질을 하면서도 '가지마'라는 말을 띄엄띄엄했다. 나는 무서웠다. 내가 토를 하고 있다는 자체가. 갑자기 토를 하고 있으므로 그 다음은 또 갑자기 무엇을 할지 몰랐다. 진정할 때까지 나는 아버지가 도망갈까봐 잡은 옷을 놓지 않았고 아버지는 아버지대로 어정쩡한 표정으로 잡혀 있었다. 순간 어머니였더라면, 생각이 들었다. 어머니는 내가 생각하고 있는 어머니대로, 내 등을 두드려줄 것이고 괜찮다라는 말을 몇 번 했을 것이다. 나는 정말로 괜찮아진다. 아버지는 잡힌 손매까지는 뿌리칠 수 없었던 것 같다. 좀 괜찮아지자 나는 어설프게 웃음 비슷한걸 지었고 입을 헹구고 욕실을 나왔다. 이후로 우리는 이 일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적이 없다


이날 이후 내게는 또렷한 상 몇 개가 남았는데, 우선은 딸애가 토하는 것이 무서워 달아나려던 중년의 남자가 나의 아버지였다는 점. 내 아버지는 당연히 등을 도닥여 줄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서운하거나 실망했을 수도 있는데, 나는 어째서인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란 무엇인가. 소같이 일하는 사람. 저녁이 한참 지나고 나서야 까맣게 어둠을 쓰고 들어오는 사람, 어디 나가는 것을 지독히도 싫어하는 사람. 딸이 있지만, 그 딸이 열 몇살이 되도록 아버지로서 학습되지 않은 사람인 것이다! 한마디로 그냥 아버지라는 '사람'이었다. 아버지라도 불안이 없는 것은 아니겠구나. 아버지라는 건 뭘까. 나도 딸이 아니라 딸이라는 사람이되야지. 라는 생각을 오래했다. 나는 이 장면을 그 이후로 몇 십번이나 떠올렸다. 꽤 멋진 장면아닌가. 어디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그렇게 잘 쓰고 싶었는데 생각대로 되진 않았다. 


오늘은 아버지 생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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