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높은 건물은 아니었으나
거대한 건물에 강박적으로 정구획된 창이 묘한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지상에는 도로의 한쪽을 차지한 오토바이떼가 우릉우릉 신호를 대기중이다. 그들이 이루는 대열의 존재감이 대단해 자동차가 귀를 내려야 할 판이었다. 신호가 바뀌고 튀어나가는 속도가 자신만만해 도시가 빠르고 젊다는 인상이 들었다. 곳곳은 공사중이었다. 대륙의 팽창 속에 일본의 절제가 박혀 충돌하는 모양으로 보였다. 대만이 어떤 얼굴을 원하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A부터 시작해서 Z까지 순번의 출구, 대문자 알파벳에서 다시 하위 숫자를 갖는 정류장은 대륙의 기상이 아니고서야 가질 수 없는 규모일 것이다. 작은 일본으로 줄곧 대만을 그려왔던 것을 모두 철회한다. 일본의 색은 삼할을 넘지 않을 것 같았다.
여기는 타이페이 메인스테이션.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내게 여기가 여행의 시작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해서 거의 모든 곳에서 길을 헤맸지만 이 터미널에서의 헤맴은 좀 더 특별하게 기록해야 한다. 길을 잃는 것으로 모자라 갇혀있었다. 이곳에 빙글거리던 시간이 한나절은 될 것이다. 터미널에서 한 번 헤매기 시작하면 원하는 출구로 나가기 위해 다섯 번은 길을 물었다. 지하 3층의 구조에 고속철도와 지하철, 그리고 버스 정류장을 함께 아우르는 곳에서 구글맵은 무력했다. 다섯 번을 물어보면 첫 번째 두 번째 사람은 직진해서 왼쪽으로 가거나 오른쪽으로 가라는 말을 전해주며 세번 째 네 번째 대답해주는 사람은 지상으로 나가야 한다고 알려준다. 그들은 정보를 한꺼번에 주는 법이 없는데, 정보를 이미 알고 있으면서 물어보는 나의 한계를 짐작한 탓이라. 그런 다음 마지막 사람에 와서야 비로소 길을 알 수 있다. 직진하다가 횡단보도를 건너면 나와요. 도착하려는 곳은 서부버스터미널 A동이었다. 다른 곳에 가기 위한 아주 작은 과정을 클리어 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이 따라다녔다. 비오듯 땀이 쏟아지는가 하면 정말로 비가 내렸고 이 복잡한 곳을 어떻게 찾았는지 싶은 사람들이 저마다 한 자리씩 차지하며 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숨을 돌리고는 나 역시 무던하게 그곳을 찾아온 사람으로, 지친 기색을 죽였다.
일상을 맥이 비치는 살이라고 한다면, 여행은 다른 이의 맥박을 잠시 듣다 오는 길이다. 시차라는 빗금을 넘어 한 사일 동안 한 시간을 숨겨 놓을 수 있었다. 내가 돌아가기 전까지 아무도 뺏을 수 없는 고유한 시간. 그러나 이것과 대신해 들여다 볼 다른 언어, 자연, 시간에 대한 관심이 없었다. 나뭇잎이 서로를 지우며 어두워지는 그림자, 보도블럭 사이 아무것도 들어오지 못할 틈, 벽지의 무늬 따위에 시간을 쏟는 나로서. 다른 바람을 맞는 기대가 자라기 어려웠던 것 같다. 그러나 다행히도 여행이 주는 경험치에 대한 무한한 긍정이 있었다. 화성을 화성이라고 대만을 대만이라고 쓰는 것. 내가 대만에 대해 아는 것은 이정도에 지나지 않았지만
돌아온 지금, 망고는 잘 모르겠고. 대만 = 망고라고는 대답은 할 수 없게 되었다.
2. 그녀는 내게 '두 개에 백원'이라고 했다
3. 무즈카시...진세
4. 보스에게 물어볼게요
5. 그는 빵을 주고 뛰어갔네
6. 그녀는 담배를 끄고 문을 열었다
- Total
- Today
- Yesterday
- 김소연
- 이장욱
-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 일상
- 책리뷰
- 이병률
- 열린책들
- 민구
- 진은영
- 차가운 사탕들
- 현대문학
- 정읍
- 네모
- 이영주
- 대만
- 이문재
- 피터 판과 친구들
- 한강
- 궁리
- 후마니타스
- 서해문집
- 문태준
- 상견니
- 1월의 산책
- 희지의 세계
- 배구
- 이준규
- 지킬앤하이드
- 나는 사회인으로 산다
- 뮤지컬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1 | 2 | 3 | 4 |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