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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15시간은 너끈히 잘 수 있을 것 같은 몸이다. 어제는 한 시간 동안 댓개의 꿈을 꿨고 그 마지막은 가위였다.
망토 혹은 고깔을 뒤집어 쓴 이가 나왔다. (고깔을 고통으로 잘못 읽는다) 그가 고통을 뒤집어 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럴 듯하다는 생각. 할아버지 같은 목소리로 뭐라고 뭐라고 했지만 제대로 듣지 않았고, 그 말을 듣기 보다 깨기 위해 노력했다. 이제는 말도 하네. 가위눌림은 점점 진화해서 형체를 갖추는것도 모자라 목소리까지 내기 시작했다. 그에 반하는 내 목소리가 꿈을 찢고 밤을 울렸을 때, 괜찮냐고 묻는 동생의 목리가 들렸다. '가위에 눌렸어'라는 대답이 잘 전해졌는지 모르겠다. 피곤했고 눈을 다시 감았다. 다시 잠들어 일어났을 땐 집 앞의 공사가 진행되는 중이었다. 이제는 별로 시끄럽다는 생각도 없이 문을 닫았다. 한 시간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공사 초기, 불행을 느꼈던 것이 거짓이 아닐진대, 이제는 그게 옅어졌다고 해야할까. 공사는 여전하고, 나의 불행은 여전하지 않다. 공사는 지속되고, 나의 불행-감은 어쨌든 줄어들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마음을 의도적으로 쓰지 않아도, 나의 일부는 힘을 내고 있다. 보통의 일상에도 다리가 붓고 목소리가 갈라지는 까닭을 알지 못했다.
점심에 냉면을 먹으려고 면을 삶았다. 처음 해봤다. 모든 처음이 실전이기 때문에 냉면을 한다는 것은 냉면을 먹는다는 뜻이었고, 면을 삶는 지침을 이해해야 했다. 이를테면, 적당한 기구를 준비해야 했다. 물이 끓고, 10초 동안만 삶으라는 설명을 지킬 수 없었다. 당황스럽게도 면을 채로 옮기는 데만 수십초가 흘렀기 때문이다. 오분은 족히 뜨거운 물 속에 면이 있었던 같다. 찬 물에 헹구어 그릇에 놓았을 땐 처참한 지경이었다. 맛이 없기로서니, 아니다. 맛의 문제가 아니라 그건 이미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면이 불고 퍼져서 서로 들러붙어 그것은 한데로 스펀지처럼 통통했다. 약간을 먹고 입맛을 잃었다. 나머지 냉면은 냉동실로 갔다. 악몽 탓이라고 생각하면 나았을까. 냉면과 원수졌던 일이 있었나 생각해 보았지만 알리가 없지. 그만한 악의가 아니고서는 냉면을 이렇게 둘 수 있는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니, 악의도 없이, 다만 10초라고 말했던 지침을 지키지 못하고 지켜본 결과가 이렇게 냉혹하다. 그렇게 해먹을 거였으면 아예 마트 진열칸에서 모른척 지나가는 편이 훨씬 좋았다. 힘겨운 젓가락질 중에 동생이 저번에 해준 냉면이 꽤 맛있었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고. 부들부들한 면을 먹으면서 사과했다. 동생은 기억하지 못하는 것 같았고, 말하자면 지난 일이었다.
냉면을 망치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다. 밖에는 공사중인데, 냉면도 망쳤는데, 두 시간은 부른 것 같다. 미친 사람같군. 생각이 절로 들었지만 어쩔 수 없다. 기타는 하나도 잘 안쳐졌지만 흥이났다. 노래를 가능하면 자주, 불러야겠다. 장을 보러 간 마트에서는 쥬시쿨이 삼백원이었다. 두 개의 진열장에 가격이 달랐다. 윗층거는 900원이었고, 아래 층은 삼백원이다. 아래층에서 복숭아맛과 자두맛을 꺼냈다. 숙주가 오백원이었고, 내일은 마트가 쉬는 날이었다. 크림 스파게티 소스를 살까하다가 나오는 길에 다시 두고 왔다. 내일은 크림 스파게티가 먹고 싶겠지.
열 다섯시간이 아니라 내일, 내일 모레, 내일 모레 글피 오후 다섯시 까지 잘 수 있을 것 같다. 언제일지 모르는 오후 다섯시, 문득 일어났을 때 베이글에 크림치즈가 머리 맡에 있었으면. 그걸 놓고 간 사람은 없어도 된다. 꾸역 꾸역 먹으면서 잠이 깨고 시계를 보면 다섯시 십분이 넘어갈 것이다. 나는 이것을 누가 놓았는지 알고 있고, 이걸 놓고 어디에 갔는지도 알 수 있다. 묻지 않아도 말이다. 그런 생각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었다.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지금 그 맛이 기억나지 않는다. 새벽 반, 이 넘어가고 있다. 자야하는데,
지우펀 사진을 찾아보았다. 센이 고되게 일하고 찐빵을 먹던 밤이 거기 있었다. 색연필을 두 자루만 챙기자. 하나는 빨강색, 그리고 다른 하나는 아무래도 파란색이겠지. 지도를 살펴보았다. 대만은 해삼 같은 모양의 나라였다. 여행지에서 내가 할 일은 몇 가지 안된다. 이번에 하나를 더 추가하면, 그림을 그릴 것. 가기 전에 센을 한 번 더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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