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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봄밤 2015. 6. 2. 00:11





나는 얼굴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다. 내 얼굴을 기억하고, 내가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얼굴이 있으며 이름이 있. 나는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고 이름을 간직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매일 지우고 싶다. 클렌징 크림. 클렌징 크림.


사랑으로 충만한 얼굴, 사랑으로 가득한 눈을 사랑한다. 그러나 나는 얼굴을 매일 지우고 싶다. 


얼굴을 지우고 나면 얼굴이 남는다. 얼굴을 오래 쓰면 눈이 빈 음울한. 옛날 단어를 보는 것 같다. 언젠가 서울을 쓸 때도 그랬다. 서울을 세 번쯤 연달아 썼을 때. 서울 서울 서울, 나는 울으라는 얘긴 줄 알았다.


얘기를 나누라고 뒤로 일부러 빠지는 사람을 알고 있다. 그럴 때면 종종 걸음을 힘내 앞으로 가 다른 사람과 몇 마디를 힘껏 부쳐보는 것이다. 어차피 대화가 되지 않는대도 말이다. 이것이 나의 대화다. 그 사람이 뒤로 물러나면서 앞으로 가라는 말을 읽는 대화. 그래서 이렇게 저렇게 웃으며 대화를 한다.


그리고 나는 자신의 돌 때와 국민학교 때 사진과 또 언젠가 처음 면접자리에서 입은 양복 사진을 보여주는 사람이 있었다. 나도 웃었다. 물결이 어느새 방향이 바뀌어서, 가로등 빛이 점점 줄어 들었다. 

그래도 나는 여전히 얼굴을 지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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