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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풍

_봄밤 2015. 3. 17. 01:02



읽다가 '귀여워'가 육성으로 나왔다. 귀여워bbb



<단지 조금 이상한>, <21세기 자본>,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동아 새국어사전>, <말과 사물>, <소설, 책>을 읽고 있다.

'있다'가 의심스러우니 다시 읽어야 한다. 실제로는 읽으면서 잔다. 읽고-잔다. 비로소 어울린다. 그러나 어떤 책은 잠을 자지 못하게 한다. 그럴 땐 곤란한 얼굴로 책을 부러 닫는 수 밖에 없었다. 


어제는 곤란한 얼굴로 잠을 쫓으며 그림을 여러 장 그렸다. 그림이라기보다 낙서에 어울리는 것이었고, 오일 파스텔이라는 명칭보다 크레파스가 더 솔직했겠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뻔뻔한 얼굴이므로 그런 냄새를 갖고 있는 12색의 칠할 것으로 나는 모자란 선을 그렸다.


오일 파스텔, 다시 말해 크레파스 냄새가 검지와 엄지, 그리고 코끝을 만지는 습관으로 하여금 스케치북을 닫아도 방안에 둥둥 떠 있게 했다. 그걸 다 잡아 스케치북에 밀어 넣을 재간이 없었으므로 그런 냄새는 유치원과 어쩌면, 그보다 더 어렸을 적의 나에게 나를 데려갔다. 


'소풍'을 그리라고 했다. 소풍을 그렸다. 한 번도 가본적 없는 소풍이었지만 망설임 없이 그려냈다. 잔디밭에 서거나 앉아 있는 가족과, 그네들의 발목부터 시작된 하늘이 스케치북 하단 2/3지점부터 수평선을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거대한 하늘을 가늠케 하는 그림이었다. 그런 소풍은 아직도 가보지 못했지만, 체크무늬 돗자리 위에는 온갖 먹을 것이 넘치는 것은 물론으로 제철 과일도 포함해서 모자람이 없었다. 어째서인지 모두가 웃고 있는 시간이었지만 이것은 그야 말로 한 때이므로 그러지 않을 수 없겠느냐, 라는 생각을 당시에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모두가 웃고 있는 표정을 동의하며 소풍을 그렸던 것은 분명하다. 


당일에는 아니었고 얼마간 지나 은상을 받았다. 덕분에 그림을 그려서 재밌었는데 상을 주다니.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다. 왜 은상이지? 라는 생각도 했겠으나 금상 같은 것은 누가 받아도 상관없다는 표정이었다. 크레파스가 몽당인 것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보였지만, 지금와 생각하니 크레파스가 몽당이 되도록 (부러뜨리며)그림을 그렸던, 7살-이전이 있었던 것 아닌가. 


얼굴을 다 가리도록 둥글던 안경테, 살구색 투피스의 유치원 선생님, 치마를 입고 기어이 올라가 놀았던 정글짐, 흰색 스타킹. 그네를 밀어주던 차근한 엄마 옆에는 꽃향기가 났다. 아직 추웠지만 봄이었다. '소풍'에 대해 더 해야할 이야기가 있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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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쓰려고 했던 짤방이 아니었는데

락스를 처치하지 못해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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