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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

_봄밤 2015. 2. 7. 20:20






한번 온다면서도 실제 오지 않았으니 이는 성문 제2과입니다. 어찌 대아라한이 도리어 소승법문을 행하십니까. 범부의 관점에서 보

아도 큰 바다는 하늘에 붙어 있는 것인데 만약 법안으로 보면 이것을 꺼릴 것은 없을 듯합니다.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 단월행을 한다고 들었는데 오히려 세간의 이치로는 시원시원하게 처리하지 못함이 있어서입니까. 청산이 깔깔대며 웃고, 백운이 웃는 것을 느끼지 못하시는군요. 내 편지는 잠시 묵혀두고 그대가 오기를 기다렸지만 영진(그림자와 티끌)으로 이어지지 않는군요. 이에 우리 집의 하인 편에 보내니 참선하는 자리에 걸어두면 좋겠습니다. 나는 관하의 주름져도 주름지지 않는 것이 있으니 증함도 없고 감함도 없을 따름입니다. 허소치는 혹 대둔사에 왔습니까. 이만 줄입니다. 임인년(1842) 3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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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문의 제2과는 욕계 수혹의 9품 중에 6품을 끊은 성자이다. 하지만 9품 중 3품을 아직 해결하지 못했으니 천상과 인간 사이를 한 번 오고간 이후에야 열반에 든다. 천상과 인간 세상을 내왕해야 열반의 경지에 드는 것처럼, 초의는 제주도와 뭍을 왕래해야만 최상이 된다는 말이다. (...) 제주도는 아득한 땅이다. 목숨을 걸지 않으면 올 수 없는 곳임을 그가 모르고 하는 말은 아니다. 대아라한의 경지를 넘어선 초의가 소승법문을 행하느냐는 그의 희언은 추사다운 멋이기도 하다. 범부의 눈으로 보아도 하늘과 바다는 붙어 있는 것, 법안으로 보면 꺼릴 것이 없다는 장쾌한 논리는 그의 자유로운 불교적 시각을 드러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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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하는 석가모니 부처께서 파사익왕에게 원래 생멸이 없음을 보여준 법문이다. 주름은 변한 것이니 멸을 받고, 주름지지 않은 것은 변한 것이 아니니 생멸이 없는 것을 말한다. 120쪽.



박동춘, 『추사와 초의』, 이른아침.




집이 꼭 마음에 들어 창문으로 목련 봉오리가 눈부셨다. 나는 연락을 기다린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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