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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5주 만이었다. 그는 오주 전에 내린 오더를 당연히 기억하지 못하고 왼쪽 팔의 반창고를 보며 의아하다. 여긴... 왜 그런가요? 그건 오늘 아침 9시에 피를 뽑은 자리이다. 진료 전에 피검사를 하고 오라고 하셔서. 아. 검사 결과는 어떤가, 왼쪽에 앉은 젊은 의사에게 물으면, 젊은 의사는 차트를 확인해 보여주면서 결과는... 확인하는 형태로 진료는 진행된다. 병원을 다닌 지는 약 한 달 반쯤 되었고 그가 나를 생년월일과 차트로 다른 이들과 분간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안다. 그동안 우리가 마주한 시간이 아직도 30분이 채 안된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지금 진료에는 나아지면서도 일정의 나쁨을 유지해야 하는 일이 포함되어 있어 좋아짐이 불안하다. 그도 끄덕인다. 좋아졌네요. 하지만 기준이 어디냐에 따른 좋아짐이고, 일반인의 기준이라면 병변이 한창인 자리이다. 그는 이제 오른쪽 눈가의 붉은기를 보고 묻는다. 여기에는 뭘 바르고 있나요. 그건 너무나 작아서 신경을 써야하는 건지 생각도 하지 못하는 종류의 것이었는데, 그는 약한 연고를 처방하며 여기에도 바르라고 말해주었다. 

 

동전만하거나 때로는 그것들이 모여 손바닥만하게 이루는 몸의 검고 붉은 염증은 여전히 검으면서도 붉지만 저마다의 속도로 나아지고 있고, 눈가의 붉은 기는 아주 작더라도 돌보고 괜찮아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거의 다 지나가고 있었다. 

 

진료실에 들어가기 전에 호명이 잘못되어서 초진 때처럼 또 어떤 젊은 의사의 앞에 앉아 병력을 이야기 하는 자리가 있었다. 젊은 의사는 바빴으므로 내 얼굴을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다.그러나 보았어도 확인하나마나 한 것이었을 것이다. 왠일로 생년월일을 체크하지 않아서 그 의자에 앉아 한달 전에 묻고 대답한 것을 다시 시작했다. 나는 중간 체크를 하나보다 했다. 체크가 거의 다 끝나고, 그래서 이 병원에는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을 때, 

 

나는 이걸 이렇게 대답해도 되나 하면서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다른 삶을 살아보고 싶어서요...'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었으나 젊은 의사를 당황하게 하고 싶지는 않았고 그 대답을 하기 전에, 그런데 지금 제가 맞나요? 하고 의심을 물었으므로, 그는 김아무개씨 아닌가요? 라고 대답하며 물었다. 저는 봄아무갠데요. 하자 그는 아, 아무래도 이상했습니다. 하고 나는 나가고 이 병원에 처음 온 김아무개씨가 들어와 김아무개씨의 병력을 듣는 일이 다시 그 안에서 시작되었다. 그리고 김아무개씨에게도 그는 묻는다. 그래서 이 병원에는 어떻게 오셨나요.

 

그러면 그 안에 있는 김아무개씨는, 아마도 나처럼 이렇게 대답해도 되나 하면서 머리를 굴릴 것이다.

'... 싶어서요'

 

그런 대화가 지나가고, 약국에 가니 친절하고 젊은 약사는 약한 연고를 설명하면서, 좋아지셨나봐요! 라고 응원해주는데 세상일이 그렇게 간단할 리 없다. 아, 그건 얼굴용이에요. 라고 해서 친절하고 젊은 약사는 얼굴도 나빠진건가요 라고 금새 어두워져서는 다시 물었다. 나빠진 건 아니고 '원래' 그랬다는 대답을 했는데 여러모로 불필요했던 대화였던 것 같다. 친절하고 젊은 약사가 끝내 겸연쩍은 표정으로 성급한 응원을 거두기 전에 그냥 응원이 될 수 있도록, 또는 응원할 수 있도록 '네!'라고 하는 것이 좋았을지 모른다.

 

아주 돌아오는 길에는, 진료실 옆에 앉아있던 젊은 의사의 얼굴과 손과 목이 너무나 하얗고 깨끗해 하얀 가운과 잘 어울렸던 것을 생각해 냈다. 진료실에서는 온통 나만 생각하기 때문에 몰랐던 것이지만, 그곳에서 진료실 외에는 도저히 걷어서 보여줄 수 없는 좋아진 팔다리를 생각하고, 도대체 뭐가 좋아졌다는 것인지 알 수 없는 걱정을 하는 나의 말에 동의하는 나이든 의사와. 그것을 일단 차트에 받아적어야 하는 젊은 의사 사이에서, 내가 바라는 다른 삶이라는 건

 

저들이 나의 하루를 짐작하기 어려운 것처럼, 나 역시 짐작하기 어려운 것이겠구나 하는데

 

한편, 나이든 의사가 눈가의 이 작은 붉은 기도 염려하는 것을 떠올리니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났다. 그건 아마도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을 보고 이해해 보려는 어떤 노력이, 노력할 생각도 들지 않는 징후를 가진 사람을 다른 쪽으로 넌지시 제안하는 것임을 알게 되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저 사이에 있어본 일이 아득했으며, 무엇보다 그 사이에 있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다. 나의 노력은 그런 것 뿐이었다. 그 동안 그걸 병이라고, 호들갑 떨며 가리키는 사람들을 오래도록 미워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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