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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 시대
푸슈킨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이 시는 알 것이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슬픔의 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다시 그리워지나니/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노하거나 서러워하지 말라/ 절망의 나날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 반드시 찾아오리라...(이하 생략)"
삶을 긍정하고 절망스러운 지금을 버티게 하는 시.
'현재는 늘 슬픈 것'이라니 이 빛나는 통찰... 그때도 그랬나 보다. 지금도 그런 듯 하다.
러시아 문학의 시작, 푸슈킨(1799년 6월 6일~1837년 2월 10일)
푸슈킨은 생몰연도도 중요하다.
나중에 이와 엮어 기념하기 때문.
푸슈킨은 외조부가 에티오피아 흑인 출신의 귀족이었다고 한다. 원래 노예였는데 표트르 대제(근대 러시아를 만든 사람) 때 귀족이 되었다고. 귀족이 어떻게 러시아 문학의 아버지로 불릴까? 러시아의 민족성을 잘 담을 수 있었을까. 어린 시절 유모로부터 러시아어를 배웠는데, 그 때문에 민중에 대해 깊이 동감할 수 있었다고 한다. 러시아 귀족 대부분 러시아어 외에도 프랑스어를 썼는데, 그도 어렸을 때부터 잘 했다.
푸슈킨은 12살부터 6년간 리체이라는 곳에서 공부를 했다. 리체이는 예카테리나 궁전에 있는 황립 귀족학교였다. 귀족 아이들만 입학할 수 있었는데 그 숫자가 30명이었다. 이곳에 1기로 입학한다. 리체이는 당시 최고 수준의 교사가 있었고, 유럽 전역에서 자유 사상을 가르쳤다. 또 리체이는 궁전정원으로 유명한데, 엄청나게 아름답고 영감을 줬던 모양. 푸슈킨은 이때의 6년을 평생 감사하며 살았다고 한다. 리체이를 기리는 시도 쓰고, 그리고 오늘날 리체이는 푸슈킨을 기념하는 시설로 가득하다.
푸슈킨 서거 100주년에 생긴 푸시킨시(市)
원래부터는 아니고 동네 이름을 바꾼 것이다.
언제? 1937년! 푸슈킨 서거 100주년을 기념으로.
차르스코예 셀로 -> 푸시킨
차르스코예 셀로는 바로바바로 리체이가 있는 동네이다.
푸슈킨은 작품은 밝고 긍정적이다. 대표작은 <예브게니 오네긴>. 시로 쓴 소설이라고 한다. 운문 소설.
말이 어렵지만 사람 이름이다. 귀족 예브게니 오네긴은 권태에 빠져 있다. 타티아나를 사랑하는데 엇갈리는 이야기.
당시 귀족들의 시대상을 보여준다고 한다. 나중에 나보코프(롤리타 작가)가 영문으로 번역하며, 자신의 작품만큼 자랑스러워 했다고 한다.
여기서 잠깐, 러시아 역사상 가장 중요한 전쟁,
러시아의 자부심을 알아보자
러시아에는 이른바 조국 전쟁이 2개 있다.
첫 번재는 프랑스 나폴레옹 전쟁(1812 나폴레옹의 러시아 원정)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가 이 전쟁을 배경.
두 번째는 독일, 히틀러와의 전쟁(세계대전)
푸슈킨이 위대한 작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나폴레옹 전쟁에서 이기고 러시아의 민족적, 애국적 고취가 일기 시작할 때 활동하며 러시아의 정서를 시와 소설로 훌륭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
푸슈킨은 37세에 결투로 죽는다
지금 사람으로서 이런 죽음은 좀 어이가 없지만 죽음보다 명예가 더 중요했던 것 같다. 결투를 했던 이유는 아내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였다고. 아내 나탈리야 곤차로바는 대단한 미인이었는데, 사교계에 바람을 피웠다고 소문이 났다고 한다. 그 바람 났다는 상대 단테스와 결투를 벌이다 총상으로 죽었다. 그의 죽음을 슬퍼한 수만 명의 조문 인파가 몰려 들었다고 한다. 당시 황제 니콜라이 1세는 이 행렬에 놀라 6만의 군대로 경계를(;;;) 세웠다고 한다.
그 이후, 푸슈킨의 문학은 국가적 차원에서 신화화 작업에 들어간다. 그래서 러시아 아이들이 태어나면 읽히고 외우게 하는 것. 시대가 지남에 따라 그 자리를 내려올만도 한데, 그 자리를 지킬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작품이 뛰어난 문학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러시아 문학 최초 자아를 가진 주인공을 만든 레르몬토프
레르몬토프(1814~1841)
역시 귀족 출신. 역시 27살에 결투로 죽는다. 친구와 사소한 일 때문이었다고 한다.
어이가 없군. 푸슈킨과 공통점은 결투로 죽었다는 것이다.
그가 유명해진 이유는 푸슈킨 때문이다. 그의 나이 23세, 푸슈킨이 결투에서 죽었을 때 쓴 시 때문. <시인의 죽음> 그냥 죽음을 기린 것이 아니라 푸슈킨 죽음의 원인이 사교계와 권력계에 있다는 분노를 담은 내용이었다고 한다. 당시 니콜라이 1세의 분노를 사서 좌천당한다. 당시 러시아는 자유가 없었다. 암울했다.
대표작은 <우리 시대의 영웅>. 제목은 비꼬는 말이다.
자전적 소설로, 이 작품은 푸슈킨의 <오네긴>을 의식한 작품이라고 한다. 전개가 비슷하기 때문. 큰 차이점은, 처음으로 자의식을 가진 화자가 출현한다는 것. 화자가 자의식을 갖고 있는 것은 나중에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가 계승하게 된다.
<우리 시대의 영웅>주인공은 20살의 청년 페초린이다. 불행한 의식을 가진 사람이고, 그 때문에 남도 불행하게 만든다. 이건 당시 러시아 시대 배경을 나타내는데, 위에서 잠깐 살펴본 것처럼 니콜라이 1세 시기는 어둡고 암울한 시대였다. 개인들을 검열하고, 자유가 없고, 무력감을 크게 느꼈기 때문이다. 페초린은 삶을 권태로워 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었고, 여행을 떠나게 된다.
너무 빨리 죽었기 때문에 더 많은 작품을 보지 못한 것이 애석한 작가. 도스토예프스키도 27살에 죽었다면 <지하로부터의 수기>도 없고 <죄와 벌>도 없고 당연히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도 없었다.
낭만주의 시대 끝. 다음에는 사실주의, 리얼리즘 시대를 알아보자.
외국어 표기는 푸시킨이 맞다.
<로쟈의 러시아 문학 강의 19세기, 20세기>에는 푸슈킨으로 기재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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