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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기억

_봄밤 2015. 9. 3. 23:50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네가 한 말을 생각했다. 요 며칠, 가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몸을 바로 일으키지 말고 옆으로 비껴서 천천히 일으키렴. 무리가 가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줄 알았다. 무리가 가니까. 그게 오늘을 좀 수월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면서 부러 그렇게 일어난다.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우스워서 슬쩍 웃었다. 천천히 일어난다.


목에 붉게 줄이 갔다.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마음이 간다. 피부가 다치지 않는 건 언제나 좀 기적같은 일이 아닌가 싶다. 비하자면 나는 무척 나아졌고, 그럴 수 있을까? 생각했던 날들에 대답을 보여주고 있다. 시간이 흉터를 문지른다. 그러나 행복한가와 늘 별개다. 그러니까 나는 몸이 좋지 않았을 때도 최고의 행복치가 있었고,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아픈 사람이나 환자에게 행복과 불행치가 꼭 온전한 사람보다 낮을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편견이기 쉽다. 불쌍한 눈빛을 보내는 건 어떤, 자신인지 모르겠다.


어제는 일처리를 잘못해서 곤란했다. 불편하게 해서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째 하고 보니 좀 지쳐서, 가장 미안한건 나에게가 아닌지. 하는 마음으로 맥주를 먹었다. 맥주에는 보리가 그려져 있었다.


낮에 지나가는 말로 논문 얘기를 했다. 논물이라는 오타가 잠깐 보였고, 아주 쨍쟁한 낮에 논으로 터 들어오던 논물이 생각났다. 오후 두시,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논물이 쏟아지는 마대에 손을 가만히 대고 앉아 있었다. 논물이 힘차게 손을 치고 갔다. 그해 수마지기 벼에 내 손이 묻어 있었다. 끝까지 머금었다. 벼가 누렇게 될 때까지 나는 계속 여덟살이었다. 겨울을 넘겨 발목까지 오는 밑둥이 서리에 서걱서걱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나는 아홉살이 되었고, 열살도 되었다. 기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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