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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일기

_봄밤 2015. 7. 3. 00:14



어제 일기에는 이렇게 적었다.


"욕실로 가는 복도는 어둡다. 발꿈치를 들고 욕실에서 나왔던 물자욱이 어스름하다. 그걸 보고 나는 좀 웃으며 들어간다. 욕실에서 나올 때 더 어두운 복도, 아까 어둠 속에 물자국으로 있던 조심스러운 발자국에 발이 슬쩍슬쩍 닿는 걸 느낀다. 나는 또 한 번 웃는다. 거실에는 네가 자고 있다. 좁은 복도를 지나는 보폭이 닮았다" 


나는 


자주 더 자고 싶다. 꿈을 오래 꾸고 싶다. 이곳은 눈 뜨며 꾸는 꿈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 모두 환영이어서 그들 역시 쉽지 않은 날이라는 걸 안다. 그러므로 그들의 밤 역시 달콤하고 길기를 빌어준다. 연약한 목숨들 악몽같은 생이야. 마당에 곁가에 채송화가 낮다. 얼마 전 골목을 지나며 화분에 있는 채송화를 봤다. 통통하게 오른 투명한 연둣빛을 황급히 지나쳤고 채송화에 대해서 얘기하고 싶었는데. 보폭이 멀었다. 그는 우연히 나를 기다리지만, 쉽지 않은 날을 지내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극한에서도 바닥을 적실 정도의 마음을 유지하는 바, 마르지 않는 발등을 보았던 것 뿐이다. 내게도 그런 발등이 있다. 우리는 파도에 그만큼 젖는 사람. 우리는 바다에서 이만큼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 모래언덕이 덥다. 편히 쉴 수 없는 오후 두시 걸을 때마다 모래가 쏟아지는 바지 끝단. 걸음을 잠시 멈추어 주라. 털어주고 다시 접어줄게, 이리와 너의 오래된 무릎을 보여주렴. 우리는 서로를 모르지만 이렇게 먼 바다를 하루에 몇 번은 같이 본다. 네가 흘리는 모래와 내가 흘린 모래가 같은 시간에 섞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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