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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얼굴 거의를 가리는 흰색 부직포 마스크를 쓰고- 그러나 쓰나마나 한 것 같은 내구성이 분명한 그것을 쓰고, 연신 분무기를 쏘아댔다. 벽지가 하얗게 되는 것좀 봐. 반뼘쯤 옆으로 몸을 옮기며 말했고,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무엇을 놓칠세라 황급히 뛰어가는 사람처럼 급하게 락스를 뿌렸다. 죽어라, 죽어, 죽어. 들리지는 않지만 거의 그런 기도가 내재되어 있는 것처럼. 리듬이 있었다. 계약하기 전에도 보았지만 살려고 들어오니 더욱 분명해졌다. 이사한 날, 드르륵거리는 나무 창을 분리해 닦은 기억이 난다. 이 쇠약한 틀을 보라. 단열이 무엇인지 전혀 모르는 지어진지 사십년 된 집을 보라. 무슨 약속처럼 계절을 불문하고 모서리마다 곰팡이가 올라올 것이었다.
곰팡이는 특히 겨울에 심했는데, 안팎의 온도차이를 막아줄 무엇이 없던 수로 당연한 일이었다. 집 안이 좀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면 예외없이 작고, 둥글고, 검은 색의 그것이 나타났다. 그럴때마다 그녀는 부산스럽게 욕실에서 락스통을 가져왔다. 처음에 그런 깔끔함이 좋아서 집을 합치는 일을 수월히 진행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냄새가 머리를 짓눌렀다. 나는 락스가 무엇인지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것은 파란 분무기통에 섞인 락스의 비율을 아는 것으로 시작해야 할 터. 일월 마지막 주 토요일. 그러니까 우리가 이사 온지 두 달이 되었을 무렵이다. 예능 프로그램을 진중하게 보는 그녀의 얼굴을 스윽 살피며 상을 물렸다. 저녁은 만족스러웠고, 저 진중한 얼굴은 재미있게 보고 있는 것이었으므로 말을 꺼냈다.
작은 방 모서리 곰팡이 다 없어졌더라.
_그거? 그럼. 다 없어졌지.
응. 락스가 효과가 좋은가봐. 자기,
그거 어떻게 섞어 쓰는거야?
_왜?
나는, 왜라는 말에 숨이 막혔다. 얼마쯤 섞어서 쓰는 것인지 천진한 얼굴로 물어봤으나. 그녀는 알려줄 수 없는 비기를 왜 건드리냐는 것처럼 날카로웠다. 그걸 말하기 전에 네가 그런걸 왜 궁금해 하는지 알아야겠다는 물음이 돌아왔다. 나는 그냥. 이라며 금방 꼬리를 내렸다. 나도 알아야 자기 없을 때 만들어서 쓰지. 라며 둥글게 지나가려는 차. 진중한 얼굴로 티비에 고정한 시선이 대답했다. 난 물을 거의 안섞어. 큰 대답을 했다는 것처럼 한동안 말이 없을 참이었다. 그렇구나. 물을 거의 안 섞는구나. 비율은 커녕 아나마나한 정보를 받고 거의 늦은 때 저녁을 챙기는 집주인을 보는 강아지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선심을 쓴다는 듯 대답했다.
거의 1:1로 섞어 써.
그건 노력으로 되는 일이 아니었다. 나도 모르게 놀라는 얼굴이 지나갔다. 위험을 감지했을 때 거의 본능적으로 일어난 표정의 변화였다. 지금 생각하기에 그때 나는 냉장고 문이라도 열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그 얼굴을 보여주었으면 안되었다. 감출 수 없다면 다른 곳을 보기라도 했어야 한다는 타박이 지금도 밀려온다. 그걸 놓칠 그녀가 아니다. 그게 효과가 좋거든. 한 발 빼듯이, 그러나 못질은 확실하게 두는 말. 말인즉슨, 희석시킨 락스가 아니라 거의 락스인 그것을 우리가 함께 자고, 일어나고, 그 밖의 일을 하는 시간에 뿌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집안일에 문외한인 내가 들어도 락스의 비율이 1:1일 수는 없다.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물과 락스의 비율은 10:1쯤 되어야 하것만, 그녀는 매사에 공평함을 원칙으로 삼았던 바, 물과 락스 어느쪽에도 편의를 봐줄 수 없었던 모양이다. 언제부턴가 파란 분무기는 그녀의 책장 위에 놓였고 그 옆에는 겨울에도 푸르름을 자랑하는 대나무가 독야청청했다. 누가 봤더라면 댓잎을 키우는 고상한 취미를 가진 여자로 보기 좋았다. 대나무는 내 보기에 물 갈아짐이 없었는데 그렇다고 잎이 한 번 죽는 일 없이 그해 겨울을 났다. 그리고 그 이유는 내가 아는 한 알 수 없는 일이었다.
꽃이 피고 그것으로 향기가 채워지는 봄이왔다. 곰팡이는 주춤했지만 가구의 안쪽, 서랍장, 옷장의 안쪽에도 그녀는 틈틈히 락스 뿌리는 일을 잊지 않았다. 그쯤 되자 학생때 향이 좋다며 놓았던 어느 디퓨저보다 락스향을 좋아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머리가 왜 어지럽냐며 타박을 주었다. 늘 흰색 부직포 마스크를 쓰고- 그러나 쓰나마나 한 것 같은 내구성이 분명한 그것을 쓰고 락스를 뿌렸다. 그러던 어느 날, 사달이 났다. 묽게 희석된 락스를 병뚜껑으로 떠서 먹은 것이다. 일요일이었다. 오후였고, 볕이 좋았다. 그럴만한 일이 일어날 기미가 전혀 없는 날이었다. 일주일에 깔아져 모처럼의 시간을 보낸 나는 깜짝 놀랐고 무슨 짓이냐며 화를 냈고, 락스통을 욕실 바닥에 내팽개쳤고, 그러나 이 몇 가지가 연이어 일어날 시간을 주지 않고 그녀는 토를 뿌렸다. 노란 물이 나오기까지, 변기에 머리카락이 젖을 때까지. 기진맥진한 욕실이었다. 유월이었고, 파란색을 보여주는 하늘이 작은 창문으로 들어왔다. 일주일이 넘도록 계속 되는 토악질, 등 두드리는 것이 관성이 되어갈 무렵.
그녀는 토하지 않고 락스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병원은 가지 않았다. 약국에서 해결했다. 위벽을 보호한다는 약을 먹었고 그 약을 사오는 일은 내 몫이었다. 사오일치는 상비약처럼 갖고 있어야 했다. 이제 그녀의 책장 위에는 파란 락스통 분무기, 병에 꽂힌 늘 푸르른 대나무, 그리고 참이슬 마개가 놓여 있다. 별다른 의심없이 지나갈 수 있는 조합이었다. 곰팡이는 검게 자랐고, 겨울 다음으로 활개치는 여름이 오고 있었다.
나는 이유 없이 침을 삼키는 일이 잦았다. 비 소식에 예민해졌고, 곰팡이 기운이 보이면 일단 마른 걸레로 닦아내 흔적을 보이지 않게 했다. 그러나 걸레에서 락스 냄새가 희미하게 나는 일 또한 나의 민첩함보다 늘 빨랐다. 이 일을 어쩌면 좋을지 고민해야했다. 여덜시에 출근하는 회사는 지쳤고 넥타이는 한쪽으로 삐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그것을 그저 우연의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나는 기울어 지고 있었던 것 같다. 퇴근 회사 엘레베이터 유리에 넥타이를 고치며 서 있다. 그녀가 락스를 처음 먹었던 날, 내 눈물에 대답한 목소리가 벽에 그러지고 있었다. 이렇게 선명하게 보이는 말자욱 누구에게라도 말 할 수 있다면. 그때 그녀의 말을 누가 들어주기라도 한다면.
거울에 비친 나조차 이 말을 함께 들을 수 없다. 이곳을 나가면 바깥은 어둠이고, 그것을 알면서 이렇게 선명한 엘레베이터 안이라니. 내가 돌아갈 곳은 그 집이고, 그곳에 그녀가 있다는 사실에 전에 없이 밤이 어두운 것임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 틈이 날 때마다 '깨끗함'이라는 단어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 것이 그 무렵의 일이다.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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