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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아빠

_봄밤 2025. 11. 14. 16:07

큰아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한 적이 있던가? 나는 큰아빠가 아주 많다. 고모도 아주 많다. 너무 많아서 세기 어려울 정도이다. 그들을 다 낳은 할머니는 어떤 사람이었을까?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알 수 없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날 때부터 없었기 때문에, 노인에 대한 인상이 없다. 대신 언제나 큰아빠 큰엄마가 계셨다. 내가 부모님 외에 처음 만난 어른은 아주 젊었던 것이다. 밭 한가운데 큰 사람이 있으면 여자는 큰엄마이시고, 남자면 큰아빠였다. 내가 큰아빠 큰엄마라고 하면 사실 그 분을 말하는 것이다. 다른 분들도 큰아빠이긴 하지만 숫자를 붙여서 이야기 한다. 첫째 큰아빠 둘째 큰아빠. 명절 때 사촌오빠들을 만나면 이상하게 이 숫자가 변하더만? 그게 좀 이상했지만 그래도 내가 기억해야 할 숫자는 헷갈리지 않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큰아빠에게는 숫자가 필요없다. 

 

두 분은 모두 키가 아주 크고 건장하다. 그 분들은 언제나 논 아니면 밭 한가운데 계셨는데, 그 중에 큰엄마는 어릴 적 체육대회에 늘 와주셨다. 애들이 많아서 엄마를 도와주셨던 것 같다. 종목이 하나 끝날 때마다 돌아갔던 야트막한 둔덕 위 돗자리. 김밥 먹고 하라며 챙겨주셨던 것이 생각난다. 그 뒤로 큰엄마는 대학 졸업식에도 와주셨다.

 

하여간 그들은 어떤 계절이든지 언제나 일만했다. 큰아빠와 나눈 이야기가 얼마나 있겠는가? 지난 수십 년을 다 합해도 그 하루보다 적을 것이다. 병원에서 큰아빠와 한 시간 넘에 이야기를 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었지만 그래도 이야기가 막힘이 없었다. 큰아빠는 자신이 아팠던 과정, 이 병원에 오기까지의 과정, 자신이 두고 온 논밭, 그래서 아빠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수술 과정, 지금 얼마나 예후가 좋은지, 병실에 함께 머무는 사람들은 어떤지 상세하게 이야기 해주셨다. 그러나 군더더기 없이, 탄식과 다행을 섞어 반응할 수 있도록 이야기 해 주셨다.

 

그 와중에 큰아빠는 얼굴이 아주 좋다며, 조심스럽게 다 나은 거냐고 물어보셨다. 나는 좋아졌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좋아진게 아니라 완전히 괜찮아 보인다고 하셨다. 얼마나 고생이 많았냐. 하고 작게 덧붙이셨다. 그 고생에 대해 이제껏 큰아빠에게 뭐라고 들은 적이 없다. 큰아빠는 말수가 아주 적으셔서 명절에 뵈어도 몇 마디 길게 하시는 것을 들을 일이 없었다. 하지만 병원에는 큰아빠와 나 밖에 없다. 둘이 이야기를 계속 해야했다. 수십년 만에 처음으로 들은 작은 염려의 말. 걱정이야 하셨겠지만 표하신 적이 없었고 그게 좋았다. 세상에는 나를 걱정하는 사람이 너무 많았다. 처음 보는 사람도 나를 걱정하며 내가 다 아는 이야기를 한참하며 이렇게 해야 한다 저렇게 해야한다, 혹은 나는 괜찮은데 자신이 더 가슴 아파했다. 어릴 적 나는 그걸 들어주느라 힘들었다. 

 

큰아빠와 아빠는 아주 닮고 옷도 비슷하게 입어서 멀리서 보면 늘 헷갈렸다. 우리 밭에도 큰아빠가 있고 큰아빠 밭에도 아빠가 있다.오늘은 누구인거지? 어린시절 가까이가서 얼굴을 확인할 때까지 인사를 하지 않은 적도 있었다. 동생에게 얘기하자 동생은 완전 다르신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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