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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지지 않는 강습자

첫 한 달, 실내에서 연습할 때 나는 절대 떨어지지 않는 강습자였다. 왜냐면 나는 잘했고, 나의 체중을 버틸만한 근력이 이 초보자의 벽에서는 충분히 있었고, 또 근성도 있어서 힘에 부쳐도 버텨냈기 때문이다. 이쪽 벽에서 저쪽 벽으로, 초보자에게 알맞은 둥글고도 잘 잡히는 홀드로는 도저히 떨어질 수 없는 코스였다. 어느 때에는 왜 떨어지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는 난이도였다. 적어도 배우는 코스 한에서는 실패없이 완주하는 사람이었다. 나는 이것이 무척 좋았다. 

 

 

#문제의 시작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나는 떨어져 본 경험이, 실패를 인정하고 내려온 경험이 다른 강습생 보다 적었기 때문에 내가 확보한 여기까지의 벽, 최소한 세 개에서 꽉찬 네 개의 홀드를 포기하는 방법을 몰랐다. 떨어지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나아갈 수도 없었다. 길이 잘 안보였고, 용기도 안났다. 하나를 버려야 뻗을 수 있는 홀드의 확보를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떨어지면 어떡해? 실패하는 것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른 발을 버리세요 왼발을 버리세요, 그래야 앞으로 나갈 수 있어요

떨어지지는 않지만 전진을 망설이는 나에게 강사님은 버리라고 말씀하셨다. 발을 버리세요, 왼발을 버려요. 오른 발을 버리고 오른 손을 뻗으세요. 놔요. 그래야 가죠. 그러다 떨어진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스포츠이고,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다고. 확보한 홀드가 왜 아까워요. 다시 가면 되는데. 거기까지 다시 얼마든지 갈 수 있다는 말씀은 하지 않으셨지만, 그것에 대한 확신이 당연히 있었기 때문에 하실 수 있는 말씀 같았다. 발을 버려요. 오른 발을, 왼발을, 오른 손을, 왼손을. 점프해요. 떨어지면 어때요? 잡으면 잡는거고, 아니면 다시 하면 됩니다. 그게 스포츠고, 스포츠로서 클라이밍이 가능한 거예요. 그저 멋진 말이라고 생각했다. 쌤, 그래도 나는 떨어지는 게 싫어요. 완등하면 되잖아요? 속으로 생각했다 나는 더 근력을 길러서 오래 버티고 나아가겠다고. 

 

#추락 연습

외벽에서 추락 연습이 시작되었다. 리드 종목은 내가 확보한 곳까지 클립에 몸줄을 걸면서 나아가는 종목이다. 처음 몇 회 강습은 등반을 했다.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가다가, 끝까지 가는 것의 성취를 알게 하시더니 이제 추락연습을 해야겠다고 하셨다. 추락은 빌레이(확보자)와 등반자가 짝을 이뤄 긴장해야 한다. 불시에 레이저 포인트로 벽을 쏘면 거기가 바로 추락할 지점이자 시점이다. 붉은 포인트를 보면 등반자는 즉시 손을 놓고 발을 떼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빌레이가 나를 잘 보고 있을까? 내가 떨어지는 것을 알까? 그러나 강사님은 추락!이라고 소리치지 않는다. 고요한 끝에 붉은 점이 등반자의 눈앞에서만 흔들릴 뿐. 나는 두 손을 놓아도 될까? 

 

#누구나 추락할 수 있다는 것

빌레이도 긴장한다. 추락하자마자 줄을 잡는 것이 아니라, 자일의 장력에 등반자가 튕기지 않고 안전하게 떨어질 수 있도록 1m~2m의 추락을 지켜봐야 한다. 그리고 그 다음에 줄을 컨트롤 하는 것이다. 추락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도전을 위해서라고 하셨다. 추락해보지 않은 사람은 자기가 할 수 있는 성공에만 안착한다. 오를 수 있는 곳을 계속 오르는 것을 완등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게 클라이밍일까요? 암장은 다른 곳에도 있고, 환경은 모두 다릅니다. 언제든지 추락할 수 있는 상황이 있어요. 불가피하게 일어나기도 해요. 그러니까 조금씩, 이해가 되었다. 추락을 피하는 것은 도전하지 않는 다는 말과 같게 느껴졌다. 어디서든 추락해보는 것, 그러니까 어디서든 도전해보는 것. 그리고 어디서든, 추락자이자 도전자를 받아보는 빌레이가 되는 것.

 

둘 다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것을 클라이밍 한다고 할 수 있을까? 

 

혼잣말 하듯이 하신 말씀에 나는 팔자 매듭을 매다가 하마터면,

선생님 방금 그 말씀 다시 한 번 더 해주세요. 

 

라고 할 뻔 했다. 과도한 몰입, 과도한 해석, 과도하게 클라이밍 인생에 붙여서 감동하기. 그런 나를 들키지 않게 침착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매듭을 했다. 옥매듭 묶으며 서로의 장비를 체크하며 올라가기 전에, 외벽을 올려다 보았다. 나는 저기서 추락하는 일만 남았구나. 그러니까 도전하는 일만 남았구나. 클라이밍에 완등보다 더 자주 있을 단어, 강습자가 친구처럼 옆에 두어야 하는 단어. 침착한 열정 옆에 놓인 도전 옆에 또한 침착한 열정으로 추락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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