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을 돌다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슬픈 제목을 발견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나는 '아무도'라는 말을 쓰면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아무도'라는 말에는 '아무도'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무도'라고 쓰는 나 자신조차 포함해서 밀치기 때문이다. 이 아무렇지 않은 단어는 심지어 쓰는 것도 쉬워서 화가 난다.이 말의 뜻은 나의 죽음을 내가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의) 죽음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제목은 '어머니'일 것이다. '어머니'는 세상 모든 '나의 시작'이므로 그것은 불러도 슬프고 써도 슬프다. 나는 '어머니'나 '아무도'라는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모음과 자음의 연결을 보고 약하게 웃는다. 세상에 가장 소중한 단어는 ..
모든 사물은 그 자신을 해치는 것을 자신 안에 가지고 있다는 걸 논증하는 부분에서요. 안염이 눈을 파괴해 못 보도록 만들고, 녹이 쇠를 파괴해 완전히 부스러뜨린다고 예를 들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것들과 유비를 이루는 인간의 혼은 왜 그 어리석고 나쁜 속성들로 인해 파괴되지 않는 겁니까? p105 내가 앉아 있던 알루미늄 의자와, 사분의 일쯤 남겨 놓은 내 치즈케이크 접시가 차츰 멀어지더니 보이지 않게 되었어. 너와 조금도 닮지 않은 임마뉴엘의 모습이 차츰 멀어지더니 흐릿해졌어. 백운대와 인수봉을 닮은 흰 바위 봉우리들이 서서히 더 멀어지다가, 배가 협곡을 돌아가자 마침내 보이지 않게 되었어.그때 왜 그렇게 가슴이 서늘해졌던 걸까. 느리디 느린 작별을 고하는 것 같던 그 광경이, 헤아릴 수 없는 무슨 말들..
(중략) 7. 에너지권력의 독점을 부수고 독립하는 길 한국에서는 원자력진영이 에너지권력을 독점하고 있다. 전기를 사용하는 모든 사람은 원자력에 종속된다. 원자력 폐기를 꿈꾸더라도 원자력에서 해방될 수 없는 구조인 것이다. (...)생산된 전기를 한국전력 등에 판매함으로써 불가피하게 원자력진영과 손잡게 되는 '신재생에너지'발전소 건설은 이러한 활동이 되기 어렵다. 이 활동은 원자력진영과 그들의 프레임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어야 한다. (...)에너지독립은 한국전력의 전기는 물론 화석연료로부터도 해방되는 것이다. 전기독립 또는 에너지독립을 하는 집은 에너지전환 정신의 세대간 지속을 보장해준다. 자녀 세대가 다른 집과 달리 자기 집에 있는 발전소에서 전기가 생산되는 것을 경험하고 직접 사용하고 전기독립의..
에드먼드 :...(앞을 응시하며) 전 안개 속에 있고 싶었어요. 정원을 반만 내려가도 이 집은 보이지 않죠. 여기에 집이 있는지조차 모르게 되는 거죠. 이 동네 다른 집들도요. 지척을 구분할 수가 없었어요. 아무도 만나지 않았죠. 모든 게 비현실적으로 보이고 들렸어요. 그대로인 건 아무것도 없었어요. 바로 제가 원하던 거였죠. 진실은 진실이 아니고 인생은 스스로에게서 숨을 수 있는, 그런 다른 세상에 저 홀로 있는 거요. 저 항구 너머, 해변을 따라 길이 이어지는 곳에서는 땅 위에 있는 느낌조차도 없어졌어요. 안개와 바다가 마치 하나인 것 같았죠. 그래서 바다 밑을 걷고 있는 기분이었어요. 오래전에 익사한 것처럼. 전 안개의 일부가 된 유령이고 안개는 바다의 유령인 것처럼. 유령 속의 유령이 되어 있으니..
원장면들 이성복 어느 날 당신은 벌겋게 익은 수박 속을 숟가락으로 파먹다가 갑자기 그 수박을 길러낸 식물(그걸 수박풀이라 해야 되나, 수박나무라 해야 되나), 그저 잔가시가 촘촘히 붙은 뻣센 넝쿨과 호박잎을 닮은 잎새 몇 장으로 땅바닥을 기는 그 식물이 불쌍하게 생각된 적은 없는지. 여름날 뙤약볕에 쪼그리고 앉아 땅속 깊이 주둥이를 박고 벌컥벌컥 물을 길어올려 벌건 과즙으로 됫박만한 수박통을 다그 채운 끈기와 정성은 대체 어디서 전수받았으며, 어디서 보상받을 것인가. 단지 쥐똥만한 제 씨알들을 멀리 날라줄지도 모를 낯선 것들에 대한 대접으로는 도에 지나친, 그 멍청한 희생을 무어라 설명해야 하나. 어느 날 당신은 고속도로에서 밤 운전을 하다가 갑자기 흰 눈송이같은 것이 차 유리창을 스치고 헤드라이트 불빛..
미국 정부는 반체제 인사를 억누르는 정책을[일부러] 추구할 필요가 없다. '사영화된' 언론 대기업에 의해 강제되는 '의견 단일화'가 그 일을 훌륭히 수행해 내니까 말이다. 이런 명백한 '제약'은 고전적 전체주의와 전도된 전체주의 사이의 중대한 차이점을 말해 준다. 전자의 경우, 경제는 정치에 종속된다. 전도된 전체주의 체제에선 그 반대로 경제가 정치를 지배한다. 또 이런 지배와 더불어 특이한 형태의 무자비함이 출현한다. 책정된 예산을 지출하지 않고, 사회보장 수급권을 제공하지 않거나,의도적으로 일정한 규제(예컨대, 환경보호 장치, 최저임금 기준)가 집행되지 않거나 연기되도록 함으로써 정부가 특정 집단에 제재를 가하는 일이 가능해진 것이다. 얼핏 국가권력의 축소로 보이는 것은 실제로는 권력 증대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녀석은 생강빵을 먹고 사는군 하고 나는 생각했다. 제대로 말하자면 점심식사를 결코 하지 않는다는 것이지. 그렇다면 녀석은 채식주의자임에 틀림없어. 그렇지만 그것도 아냐. 녀석은 채소조차 일절 먹지 않고 생강빵 말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아. 그러자 내 마음은 오로지 생강빵만 먹고 사는 것이 인간 체질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하는 공상에 빠져들었다. 생강빵이 생강빵으로 불리는 까닭은 빵에 그 특이한 구성요소 중의 하나이자 최종적으로 맛을 내는 성분으로 생강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근데, 생강은 어떤 것이더라? 맵고 향긋한 것이지. 바틀비가 맵고 향긋한가? 전혀 그렇지 않아. 그렇다면 생강은 바틀비에게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았어. 아마 녀석도 생강이 어떤 영향도 끼치지 않기를 바랐을 거야. p65 허먼 ..
사진은 기법상의 몇 가지 측면-이것은 나의 주된 관심사가 아니다-을 제외하면 그 기원부터 지금까지 변한 것이 없다. 사진은 쉬운 작업처럼 보인다. 그러나 실제로 사진은, 사진을찍는 사람들의 유일한 공통분모라고는 장비뿐인, 다양하고 모호한 작업이다. 이 기록 장치에서 나오는 것은 소비 세계의 경제적 제약, 갈수록 높아지는 긴장, 분별없는 생태학적 결과에서벗어나지 못한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달아나는 현실 앞에서 모든 능력을 집중해 그 숨결을 포착하는 것이다. 바로 그때 이미지의 포착은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커다란 즐거움이다. 사진을 찍는다는 것은 머리와 눈 그리고 마음을 동일한 조준선 위에 놓는 것이다. 나에게 사진을 찍느다는 것은 다른 시각적 표현 수단들과 분리될 수 없는 이해 수단이다. 그것은 독창성..
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이제니 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 달콤 달콤 부풀어오른다 달콤 달콤 차고 넘친다 액체에게 마음이 있다면 무슨 말을 할까 당신은 당신을 닮은 액체를 가지고 있나요 당신은 당신을 닮은 액체에게 무슨 말을 하나요 고백을 하고 돌아서서 만다린 주스 고백을 들은 너는 허리를 숙여 구두끈을 고쳐맨다 고백과 함께 작별이 시작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요 액화되었습니다 액화되었습니다 나는 만다린 주스를 응원하고만다린 주스는 나를 응원하지만 만다린 주스는 울적하게 달콤 달콤울적 울적하게 줄어들며 달콤 달콤 가만히 오른손을 가슴에 얹고어제의 고백으로부터 달아나고 싶은 심정 우리에겐 식탁과 의자와 바닥과 불안과어제보다 조금 더 묽거나 조금 덜 묽은 액체가 있었다 고백을 하고 만다린 주스달콤 달콤 다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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