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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을 돌다가 세상에서 두 번째로 슬픈 제목을 발견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죽다』

나는 '아무도'라는 말을 쓰면서 설명할 수 없는 슬픔을 느낀다. '아무도'라는 말에는 '아무도' 닿을 수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아무도'라고 쓰는 나 자신조차 포함해서 밀치기 때문이다. 이 아무렇지 않은 단어는 심지어 쓰는 것도 쉬워서 화가 난다.
이 말의 뜻은 나의 죽음을 내가 모른다는 뜻이다. 그래서 세상에 (나의) 죽음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서 제일 슬픈 제목은 '어머니'일 것이다. '어머니'는 세상 모든 '나의 시작'이므로 그것은 불러도 슬프고 써도 슬프다. 
나는 '어머니'나 '아무도'라는 이 단순하기 짝이 없는 모음과 자음의 연결을 보고 약하게 웃는다.


세상에 가장 소중한 단어는 이토록 쉽게 말해지도록 되어 있다.




이곳을 누르면 책의 본문을 미리 볼 수 있다. : 책 읽는 사회를 위한 북매거진 나비 





카야르딜드어는 호주 퀸즐랜드 주 벤팅크 섬의 원주민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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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심리언어학자 핑거와 블룸은 언어 진화에 관한 저명한 논문에서 명사에 결합하는 접사로 
시제(문법적 시간)를 표현하는 언어는 없다'고 주장했다. 
가능한 인간 언어란 이런 것이라는 선험적 제약이 언어를 배워가는 아이에게 
근본적인 지원 역할을 한다고 보는 촘스키의 보편문법 이론도 이 주장과 궤를 같이 한다. 
아이가 부모의 말속에 내재하는 문법을 추론하는데 필요한 가설의 수를 이 선험적 제약이 줄여준다는 것이다.  

카야르딜드어는 이 불가능성을 태연자약하게 무시해버린다. 카야르딜드어는 동사뿐만 아니라 명사에도 시제를 표시한다. 

예컨대 카야르딜드어로 '그가 바다거북을 보았다'라는 문장은 niya kurrijarra bangana인데, 
과거 시제를 동사인 kurrij(보다)에 -arra로 표시할 뿐만 아니라, 목적어 명사 banga(바다거북)에도-na를 표시한다. 
'그가 바다거북을 볼 것이다'라는 미래 표현 문장 niya kurriju bangawu에서도 
미래 시제가 동사와 명사에 각각-u와 -wu로 표시된다. 
(a,i,u는 스페인어나 이탈리아어의 해당 음가로, rr는 전동음으로 발음하며, ng은 singer, j는 jump에서와 같이 발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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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르딜드어를 보면, 세계: 언어의 다양성이 정확히 어느 정도 규모인지 무시한 채 제한된 표본에 기초하여 
언어의 '보편성'을 논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 알 수 있다. 
시제란 사건 전체, 즉 동사에 의해 표현되는 행위뿐만 아니라 의미적 참여자의 시간적 위치를 나타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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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야르딜드어를 배운다는 것은 다른 언어에는 없을 것 같은 문법을 터득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카야르딜드어를 배우려면 세계에 대해서도 아주 다른 방식으로 사고해야만 한다. 

"이 책의 동쪽 페이지"를 "당신 무릎에서 북쪽"으로 약간 움직여보라. 이 지시를 따를 수 있으려면 조금은 낯선 방식으로 사고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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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언어는 화자 공동체라는 '밖'과, 그 언어를 쓰고 가르치려면 그 언어에 대해 모두 알아야 하는 각 개인의 마음인'안'을 오가는 이중적인 삶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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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서 언급하는 원주민들은 전형적으로 백인 이름과 전통 이름을 모두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팻 가보리'는 백인 이름이며 '카바라르징가티 불투쿠'는 전통이름이다. 
흔히 전통 이름은 은행 계좌의 비밀번호에 비견될 정도로 강한 사적요인을 띠며, 매우 아껴 쓰는 이름이다. 
따라서 이 책에서는 주로 백인 이름을 쓸 것이다. 

주석. 29




작성 : 2013/12/03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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